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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해 친구에게 확인해봤더니 2005년이란다. 어릴 적에 4학년 때까지 내가 다녔던 고향 남해의 국민학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어른들의 체육대회가 열렸다. 매년 추석 연휴기간을 이용해 그 학교 동창회가 기수별로 주관해 체육대회를 열어왔는데, 그해에는 우리 기수가 주관하는 순서였다.


체육대회는 그 학교 학군 내에 있는 마을별 대항으로 진행됐다. 그러니까 학교를 졸업한 동문 뿐 아니라 학군 내 마을에 사는 모든 주민이 참여대상이었고, 팀도 마을별로 구성했다. 운동장에는 마을별 천막이 설치되고 막걸리와 각종 음식이 준비됐다. 거기에 드는 비용은 주관하는 기수의 동문회가 마련해 각 마을별로 얼마씩 지원하는 식이었다. 


일생에 한 번 내지 많아야 두 번 정도 돌아오는 부담이어서 해당 기수의 동문은 제법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했지만 크게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체육대회 행사에 가보니 주관하는 우리 기수는 그냥 '시다바리(보조)' 역할이었고, 실제 행사의 주인행세를 하는 사람은 총동문회장과 간부들이었다. 뭐, 그건 그렇다고 치자. 좀 있다 시작된 '개회식'이 아주 가관이었다.


총동문회측은 연단에 동창회장과 면장, 농협조합장, 군의원 등 소위 지역유지들을 의자에 앉혀놓고, 참석한 선수와 주민들은 마을별로 1열종대로 줄을 세워 열중쉬엇 자세로 서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줄지어 선 주민들은 대부분 7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가을 땡볕에 노인들을 그런 자세로 서있게 하는 건 영 아니다 싶었다.


게다가 동창회장의 개회사 연설은 지루하고 따분했다. 많아봤자 50대인 그가 어른들을 세워놓은 채 거들먹거리며 가오를 잡는 것도 비위가 상했다. 참석한 유지들도 일일이 축사를 시킬 태세였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내가 참지 못하고 대열의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있는 선수와 주민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앉읍시다. 앉아요. 앉으세요. 앉으세요."


그랬더니 처음엔 쭈뼛쭈뼛하던 주민들이 엉거주춤 서 있던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운동장은 잔디구장이었고, 총동문회측에서도 처음엔 당황하는 듯 하더니 따로 뭐라 하진 않았다.

그렇게 하여 지역유지들의 지루한 축사가 이어지긴 했지만, 참석자들은 편한 자세로 앉아서 개회식을 마칠 수 있었다. 중간에 군의원이 축사를 하던 중 느닷없이 내 이름을 들먹이며 "경남도민일보 사회부장님도 오셨고.." 하여 좀 당황하긴 했지만...




그런데 개회식이 끝나고 운동장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서는 순간 놀라운 풍경이 드러났다. 위의 사진처럼 할머니들이 앉았던 자리에는 영락없이 잡초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들이 밭메기를 하던 습성으로 잔디 사이에 자라난 잡초들을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앉은 상태에서 자리를 조금씩 이동까지 해가며 눈에 보이는 잡초를 모조리 뽑아 더미를 쌓은 것이었다.


'할머니들의 놀라운 풀메기 본능'이었다.


위 사진은 회사 앞 삼각지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누군가 뽑아놓은 잡초더미를 보고, 마침 10여 년 전 그때의 일이 생각나 찍어온 것이다. 당시에도 분명 내가 사진을 찍긴 했을 텐데, 컴퓨터가 여러 번 고장이 나는 바람에 파일이 멸실된듯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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