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기록


사용자 삽입 이미지1950년대 용화리 전경.

충북 영동군 용화면 용화리에는 아주 특이한 비석이 있습니다. '지서주임 이섭진 영세불망비'입니다.

이 경찰관은 상부의 지시를 거역하여 민간인 집단학살을 막은 분입니다. 경찰관에 대한 이런 종류의 비석은 아직까지 전국에 유일합니다. 또한 이 공덕비의 존재가 매체를 통해 알려지는 것도 이 포스트가 처음입니다.

민주지산 아래의 특이한 비석

이 비석은 죽음의 구렁텅이에 내몰린 지역 주민들을 자기 목숨을 걸고 살려 준 이섭진 지서장의 아름다운 인간애를 후세에 널리 전하고자 용화리 주민들이 십시일반 마음과 돈을 모아 세운 비석입니다. 살아난 사람들은 국민보도연맹원입니다. 그는 한국판 쉰들러였던 셈입니다.

56년간 비바람을 맞아, 글씨가 흐리지만 알아 볼 수는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支暑主任 李燮晉 永世不忘碑

剛明莅事 濟之慈仁 (강명이사 제지자인)
鎭玆一區 傍及外鄰 (진자일구 방급외린)
家家懷德 人人迎春 (가가회덕 인인영춘)
路上片石 永年不泯 (노상편석 영년불민)

-檀紀 四二八五年 十一月 十一日 住民一同-

지서주임 이섭진 영세불망비

강직하고 현명하게 일에 임하여 어질고 착한 마음으로 사람을 구했네
한 고을을 잘 다스리니 그 덕이 이웃에까지 미쳤도다.
모든 사람들이 봄을 맞이하듯 집집마다 그의 덕을 기억하여
비록 길가에 세운 조각돌일지라도 영원히 잊지 말자.

-1952년 11월 11일 주민일동-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섭진 지서장 영세불망비.


전국에는 한국전쟁기에 보도연맹원을 포함해 민간인학살 과정에 죽음을 면할 수 있도록 도와준 지역유지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세워진 비석이 몇 개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제주도 대정읍 하모리 진개동산에 마을 주민들을 살리는 데 공이 많은 김남원 면장과 조남수 목사의 공덕비입니다.

하지만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에 대한 공덕비는 이곳에 세워지지 못했습니다. 당시 예비검속 된 수 백 명의 지역민들을 살리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문서장의 공덕비를 함께 세우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희생자 위령비가 없는 상태에서 경찰출신의 공덕비를 먼저 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세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즉 보도연맹원, 예비검속자 등을 살려주어, 마을 주민과 유족들이 세운 경찰공덕비로는 '이섭진 영세불망비'가 전국에서 유일한 것입니다.

용화면 보도연맹원 30여명이 살아난 이유

전쟁이 발발하고, 대전이 함락되기 하루 전인 1950년 7월 19일 용화면 보도연맹원들이 모였습니다. 아침 일찍 순경이 마을에 와서 “보도연맹원 소집교육이 있으니 반드시 참석하라”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인 30여명의 보도연맹원들은 낮에는 돌로 지서울타리를 쌓는 작업을 하고, 밤에는 용화초등학교 뒤 창고에서 잠을 자게 됩니다. 바쁜 농사철에 1박 2일의 소집교육이 무척 불만이었지만, 내일이면 집에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잠을 청했습니다. 내일이면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린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사용자 삽입 이미지상촌면 상도대리 숯가마.사용자 삽입 이미지영동대 부근 석쟁이재.사용자 삽입 이미지영동읍 부용리 어서실.

용화면처럼 영동군 내 모든 읍면 보도연맹원들은 영동경찰서나 지서에 소집되어 하룻밤을 잔 후, 그들이 상상도 못한 일을 당합니다. 군인들의 총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영동군 내 300여명의 보도연맹원들은 7월 20일 영동읍내 어서실과 석쟁이재, 상촌면 고자리에서 집단학살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영동군에서 죽음의 골짜기로 끌려가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용화면 보도연맹원들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순전히 의로운 경찰 이섭진 지서장의 용기 있는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섭진 지서장(사진 우측).


전쟁 당시 용화지서장을 맡고 있던 이섭진은 1950년 7월 18일 오후에 영동경찰서장의 긴급호출을 받습니다. 경찰서에 도착해 보니 모든 지서장들이 참석해 있었습니다.

김경술 서장은 참석한 지서장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합니다.

“오전에 (이시환)도경국장과 특무대(CIC) 파견대장으로부터 지시받은 사항입니다. 내일 중으로 국민보도연맹원들을 모두 격리하라는 지시입니다. 오늘부터 유치장도 특무대가 관리한답니다. 전시 비상계엄 하에서 어쩌겠소. 군에서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남부 네 개 면은 황간지서로, 용화면은 용화지서로, 영동읍을 비롯한 나머지 여섯 개 읍면은 경찰서 수사계로 인계하되 황간지서장과 용화지서장은 지서나 창고에 이들을 집결시켰다가 특무대에 인계하세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교육소집이니 한사람도 빠져서는 안 됩니다. 바로 실행하십시오.”

지시사항을 들은 이섭진 지서장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결국 이 말은 보도연맹원들을 전부 처형하겠다는 뜻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불과 6개월 전에 정부에서는 과거 좌익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북한과 공산주의로부터 보호하겠다’라는 취지로 국민보도연맹을 만든 것이 아닌가? 또한 보도연맹원 대다수가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일자무식의 농사꾼들이지 않은가? 해방 후 격동기에 “농토를 나눠 준다”, “비료 배급해 준다”라는 이야기에 도장을 찍은 것이 남로당원 가입서이고, 농민회 가입서 였고, 이것이 자동으로 보도연맹 가입의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전향을 시켜 보호하겠다’라는 취지는 어디 가고, 모두 죽이겠다라는 것인지.....

이섭진 지서장은 부인 박청자와 상의 후에 자기 목숨을 걸고 서라도 보도연맹원을 살려 주어야 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7월 19일 오후, 보도연맹원 한 사람을 데리고 창고로 갔습니다. 창고는 일제 때 지은 것으로 나무 판자를 엮어 흙을 바른 목조 건물이었습니다. 낡고 허름했지만 30여 명은 수용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섭진은 널빤지를 구해다 허술하게 봉창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철사나 끈을 자를 수 있는 칼과 가위를 하나씩 창고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지서로 돌아오는 길에 이섭진은 동행한 보도연맹원에게 은밀히 당부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상촌면 고자리 현장과 유족들.


“무슨 일이 생기면 아까 막아둔 봉창으로 빠져 나와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게. 이유는 묻지 말고. 그리고 지금 내가 한 말을 절대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안 되네.”

이 이야기에 눈치를 차린 보도연맹원들은 그날 밤 모두 탈출을 했습니다.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었습니다.

용화면 보도연맹원 중에 죽은 사람들은 청년방위대원으로 전쟁 직후에 자원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처형을 당했습니다.

수복 후, 이섭진 지서장의 아름다운 행동은 순식간에 용화면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집니다. 1951년 말 이섭진은 매곡지서장으로 발령을 받는데, 이를 아쉬워하는 용화주민들은 지서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해 11월 11일 주민들은 이섭진 지서장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는 '지서주임 이섭진 영세불망비'를 세웠습니다.

/박만순(충북역사문화연대)

신고
  1. 이전 댓글 더보기
  2. 헤메는 발길
    2008.06.21 11:54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이지서장님은 참 훌륭하시고 세세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십니다.
    공직자가 자기의 임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하기 보다 인간에 대한 존엄을 우선시 하는 행동은 오늘날의 검경찰도 꼭 본받아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3. 개구쟁이
    2008.06.21 11:55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이런분을 경찰청장으로 만들어야하는데..어쩌고,,
    장하시네요
    존경스럽네요.
    우리민족의 우상이 되길..아니 경찰의 우상이길...

  4. 팔도사나이
    2008.06.21 12:07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제 고향이 영동이고 친구집이 용화면인데..
    함 찾아가야 겠습니다..
    존경합니다~~

  5. 우리집강쥐바기
    2008.06.21 12:08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진정한 경찰이고 진정한 공무원이네요.

    지금도 묵묵히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계신 분들도 많겠지만...
    있는 현실을 보면 또 실망하는 경우가 더 많네요.
    저런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존경합니다.

  6. 이회창애비
    2008.06.21 12:12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이회창애비 비석있냐? 이놈들아?

  7. 살고싶은 한국인
    2008.06.21 12:16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이런 사람이 지금도 대한민국에 있어야 하는대 지금 있을까 없을까 내가 한번해보면은 좋을것같은대 정말로 그런 경찰이 단한명이라도 존재할까 정말로 궁금하내 내 생각은 없다로 결론을 짖어본다 있으면은 이리될까

    1. Re: 정일사랑
      2008.08.26 02:23 신고 Delete Permalink

      경찰관이 아니시더라도 많으시죠.

      요사이 소방 공무원님들 자신의 일에 충실히 하시다가

      순직하시는분 이섭진지서장님 못지않게

      우리가 고마워하고 감사해야분들이네요.

      그 당시일들을 생각하니 맘이 넘아프네요. 일반 민간이이 아무것도 모르고 많이 죽었다는것이 맘아픔니다. 그와중에서 칭송할만한 경찰관님이 계셨다는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 눈물이 납니다.

  8. 객인
    2008.06.21 12:45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공덕비 : 선정(善政)을 베푼 감사(監司)나 수령(守令) 등이 갈린 뒤에 그들의 공덕을 기리어 그 고을 주민들이 세운 비석(碑石).

    절이나 기관에서 세워주는것은 이름만 공덕비이지 실제 뜻과는 괴리가 있습니다.
    지금 이 글쓰신분이 말씀하시는게 맞습니다. 이게 처음이 맞고 한개가 맞습니다.
    다른것들은 단체나 기관에서 감사의 뜻으로 세운것이고, 공덕비의 본래의 뜻을 가진것은
    저것밖에 없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9. 네이티
    2008.06.21 12:49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사람은, 사람다워야 사람입니다. 요새는 사람다운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죠?

  10. 용궁물랫
    2008.06.21 13:07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김용인서장 공덕비도 있는데요 인터넷검색 곡성서장

    1. Re: 정일사랑
      2008.08.26 02:48 신고 Delete Permalink

      네이버 야휴에 발견 안되네요.자세히 주소를 써주시면 좋것네요
      그러구,공덕비가 하나건 두개건 열개먼 더 좋겠지만, 여기서 댓글로서는 의미는 별루네요

  11. 여인천하
    2008.06.21 13:10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훌륭하신분입니다. 아마 격동기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렇게 노력하신분들이 많을겁니다.

  12. 광장
    2008.06.21 15:04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이글을 읽으며 좌우가 싫어진다.

    이분은 쉰들러 좌파의 귀감이며

    이분은 친일파 우파의 표상이다.

    필요하면 친일파요,필요하면 빨갱이니

    도대체 이사람의 근본은 무엇인가?

    살려고 하는짓에 그무슨 의미부여

    그것을 선현들은 곡학아세 표현하네

    독도수비 당연히 먹고살려 한일인데

    어느신문 독도수비 미역채취 운운하네

    먹고살려 땅지키지 명예타려 땅지키냐?

    지금은 그기사 찾을수도 없다네

    기사발굴 좋다지만 보도연맹 빼버리면

    이분은 영락없이 친일의 앞잡이네

    1. Re: 태린맘
      2008.06.26 13:59 신고 Delete Permalink

      저희 할아버지에 대해 그렇게 잘 아시고 하시는 말씀이신지..친일 앞잡이라고 하셨나요? 당시 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표현하시는게 지나치시네요..
      안타깝습니다..

  13. 은하수
    2008.06.21 15:11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몰랐던 것을 알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제 고향 근처인데도 아직껏 그러한 사실이 있는지도 모른채 살아왔습니다... 고향가는 길에 한번 들러 그분의 덕에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할것 같아서...그리고 위 글을 빌려갑니다...

  14. 부사리
    2008.06.21 15:18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한국에서 하나뿐이라는것은 님께서 모르시고 쓰신 글인것 같습니다.
    6.25사변때 지리산 일대에 빨치산이 활동 거점으로 삼아 맹위를 떨치고있을때
    지리산 화엄사를 중심으로 빨치산이 활동을 한다고 경찰 수뇌부에서
    화엄사를 불태우기로 결정을 하고
    소각명령을 내렸읍니다.
    그러나 당시 토벌대장이었던 차일혁총경은
    문화재를 소각하는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일이라고 하면서
    상부의 명령을 듣지않고 화엄사를 지켜냄으로써
    화엄사를 지킬수 있었기에 이에 고마움을 표하기위해
    화엄사 경내에 구례군민과 화엄사가 공동으로 공덕비를 만들어 세웠습니다.

  15. 또롱
    2008.06.21 17:34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좋은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려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16. 태린맘
    2008.06.24 14:32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이모가 daum블로그에서 할아버지 존함을 쳐보라고 하셔서 이 글을 만나게 되었어요..

    이 내용이 책으로 나오기전에도 엄마한테 외할아버지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어요..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을 땐 그저 엄마의 아버지이고 나의 외할아버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훌륭하신 분인지 나중에야 알았어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 엄마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시면서, 역사에 남을 훌륭하신 분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내용 외에도 할아버지가 크리스찬으로서 얼마나 믿음이 강한 분이셨는지,
    항상 약자의 편에서 방패가 되셨다는 말씀도 들었어요..
    그 뒤엔 늘 할머니의 기도가 있었다는 것도..

    책이 나왔을 때, 할아버지 일대기가 책으로 나왔으면 하셨던 엄마의 바램이 부분이나마 이루어진거 같아서 감사했는데, 블로그에도 기사화되어 더 감사한 마음이에요..
    할아버지의 공을 알려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처럼 적막한 세상에서 한 줄기 희망이 되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그게 할아버지가 실천한 사랑이니까요..

    엄마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워 하셨던 할아버지..저도 정말 자랑스러워요..
    천국에서 지켜보고 계실 엄마와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글 감사합니다..

    1. Re: 선산을 지키는 나무
      2008.06.25 00:43 신고 Delete Permalink

      엄마가 돌아가셨군요. 가족은 너무 가까워서 늘 모르고 지나는 것이 있기도 하지요. 할아버지랑 엄마가 다른 영역에서 미소 띄우고 있을 것 같아요. 살아있건 그렇지 않건 다정한 가정이시군요...따뜻해서 참 좋아요..내내 행복하세요. 글고 좋은 가정 이루실 것 같아요^^

    2. Re: 정일사랑
      2008.08.26 02:04 신고 Delete Permalink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눈물이 납니다.

  17. 코알라
    2008.06.24 19:29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태린맘 누구인가?
    글로봐서는 내조카님인데.....
    오늘도 너희엄마 예기를 많이했고 안타까왔다.. 그리고 보고싶고.....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기뻐했을것을 ...

  18. 영민
    2008.06.26 01:44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아버님의 이야기을 읽어주시고 뎃글을 달아주시고 관심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부모님께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셨읍니다 두분께서는 밤세워 눈물로 기도하시고 그일을 하셨읍니다 부모님 당신들을 위하여 기도하지아니하시고 그분들을 위하여 밤새워기도하셨읍니다 무척 두려웠다고 하셨읍니다 종교적인 차이점은 있겠지만 그순간 그런 결정을 하신것은 그분들의 하니님에 대한 믿음으로 선택하신일입니다 오해없으시기바랍니다 또 52년 매곡에서 또한번 기도하시며 실행하신일이있읍니다 책에는 나와있읍니다 그때도 목슴을 걸고 하셨읍니다 그리고 저희 부모님은 30세에 그일을 하셨읍니다 어머니는 만삭이셨구요 어머님은 금식하며 기도하셨읍니다 저희아버님은 절대로 친일파도 일본군앞잡이도 아니싶니다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관십 보여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 Re: 정일사랑
      2008.08.26 02:01 신고 Delete Permalink

      한국에서 최고로멋진 경찰관 아버지 어머님를 두셧네요.

      저두 멋진 이섭진 경찰관님이 계셨다는것이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합니다.

  19. 원형
    2008.08.26 10:04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그때나 지금이나 이념이 뭔지..
    참 ...눈물이 나네요...

  20. Favicon of http://교ㅛㅑㅐ BlogIcon 박진
    2008.10.08 13:09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진서장님의 그후 행적이 궁금 합니다

    1. Re:
      2008.10.08 13:20 Delete Permalink

      비밀댓글입니다

  21. 의산
    2017.07.09 17:23 신고 Delete Reply Permalink

    정말 훌륭한 분.
    그런데 책 이름은 뭔가요?

Leave a comment
미디어오늘이 제시하는 기자의 자격은 과연?

미디어오늘이 29일 채용공고를 냈다. 공고 내용이 인상적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흥미로운 콘텐츠다. 아마도 이정환 사장의 작품일터... 그 중에서도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며 제시한 기자의 요건이 눈길을 끈다. 미디어오늘이 채..

시골마을 체육대회 개회식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해 친구에게 확인해봤더니 2005년이란다. 어릴 적에 4학년 때까지 내가 다녔던 고향 남해의 국민학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어른들의 체육대회가 열렸다. 매년 추석 연휴기간을 이용해 그 ..

경남도민일보 소셜미디어 이용 가이드라인

경남도민일보 소셜미디어 이용 가이드라인 경남도민일보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 유튜브,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 등 소셜미디어가 자유로운 개인도구임을 인정하고 우리가 생산한 콘텐츠를 널리 알리기 위해 이용을..

도민주신문 창간을 위한 1차 간담회 초청장

참언론의 문을 열어주십시오 경남매일이 지난 10월 3,000호를 끝으로 그 생명을 다했습니다. 특정자본에 기대어 살아온 언론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 예정된 사건이었습니다. 경남매일직원들이 종간호를 만들때 흘린 눈물은 직장을 ..

지느러미가 특히 고소한 생선 날치를 먹다

2016년 5월 일본 야쿠시마에 다녀왔다. 거기서 생전 처음 먹어본 생선이 날치였다. 날치라는 생선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을 잡아서 구워(또는 튀겨) 먹는 건 처음 보았다. 특이한 건 날치의 큰 지느러미를 전혀 제거하지 ..

왜 남자들은 잠 자리 거절하면 화를 낼까

어쨌거나 살면서 좀 신기했던 건, 저렇게 성적으로 유혹하는 상대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을 때 화내는 남자가 엄청 많더라구요. 여자들도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 하면서 화내는 사람이 있겠지만, 여자는 살짝 꼬셔봤는데 저쪽에서 ..

« Previous : 1 : ··· : 46 : 47 : 48 : 49 : 50 : 51 : 52 : 53 : 54 : ··· : 56 : Next »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