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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에 대한 정의기억연대 설명자료

역사기록|2020. 5. 2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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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정의연 설명자료] 
 
안녕하세요 정의기억연대입니다.  
 
오늘 기자회견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보았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30년 운동을 함께 해왔던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의 기자회견에 대해 입장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몇 가지 부분에서 기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자료를 내고자 합니다.  
 
1. 정신대와 일본군‘위안부’, 성노예제 관련  
 
용어의 혼돈을 피하기 위해 간략히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신대’
- ‘근로정신대’의 줄임말.
- 소학교 고학년 정도 연령으로 일본의 군수공장 등으로 끌려가 군수품 등을 만드는 일을 강제당한 피해자임. 
 
‘위안부’
- 일제에 의해 성노예를 강요당한 피해자를 일컬음.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 1990년대 초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피해의 실상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정신대’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임. 실제 일제 식민지 하 제도상 혼용과 용어의 혼용이 존재했음.
- 정대협은 일관되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활동해온 단체임.
- 정신대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는 별도로 존재하며, 활동가들은 혼동하지 않음.
- 정대협에 포함된 ‘정신대’는 운동의 역사적 산물에 불과함. 
 
‘성노예’
- 일본군‘위안부’ 피해의 실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개념으로 국제사회에서 정립된 것임. 1992년 초부터 영어 신문에는 sexual slavery로 기재되어 있음. 특히 1996년 인권위원회에 제출된 라디카 쿠마라스와미(Radhika Commaraswamy) 보고서가 “전시하 군대 성노예제(military sexual slavery in wartime)”라고 명확히 규정한 것이 주요하게 기여함.
- ‘성노예’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성적 착취를 받은 피해자’를 의미하는 것일 뿐
- 피해자를 매도하기 위한 용어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피해의 실상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학술적으로 구성된 개념임.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이유로 지금까지 힌국의 언론 등에서는 정신대, 종군위안부, 위안부 등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2.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증언 채록 및 관리   
 
<증언 채록과 증언집 발간의 배경>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김학순 할머니 공개 기자회견 이후 정대협은 같은 해 9월 피해자 신고전화를 개설하고 피해자 신고를 받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께서도 정대협의 신고전화를 통해 피해신고를 합니다.  
 
한국정부는 1992년 2월 외무부 산하에 피해신고 전화를 개설하게 되면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신고는 정대협과 정부, 아시아태평양 전쟁 유족회 등에서 진행되게 됩니다. 정대협 운동의 결과, 1993년 피해자 지원법(일제하일본군위안부에대한생활안정지원법 (약칭: 위안부피해자법 ) [법률 제4565호, 1993. 6. 11. 제정. 즉일 시행]이 만들어 지면서 정부차원의 피해자 등록이 시작됩니다.  
 
<증언 채록의 경과와 증언집 발간 상황>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은 증언집 1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에는 정대협보다 몇 개월 먼저 만들어진 《한국정신대연구회》(이후 한국정신대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참여하여 증언의 채록이 이루어지고, 《정대협》과 《한국정신대연구소》 공동저작물로 증언집이 출간되기 시작합니다(당시에는 윤정옥 교수, 정진성 교수 등 정대협 구성원과 연구소 구성원이 겹침). 1993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증언집에는 〈피해자들의 피해사실〉 〈현재의 생활〉 〈한.일 정부에 바라는 점〉등이 담기게 됩니다. 피해자 증언집은 『강제로 끌려간 군위안부들』 1~6권 까지 정대협이 주도해 출간합니다.  
 
정대협은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긴 증언집 발간을 통해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역사적 진실을 정확히 알리고 가해자의 범죄인정과 그에 따른 책임 이행을 이루게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당시 증언집은 피해자의 존재를 알리며, ‘증거 문서부재’를 이유로 불법성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자료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기자회견이 특히 더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일본우익과 역사부정주의자들이 피해자의 증언을 부정하며,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의 인권과 명예를 훼손하는 행태를 보이는 데 있어 가장 많이 악용되고 공격받았던 분이 바로 이용수 할머니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사회적 맥락이 반영됩니다. 가해자들은 최초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후 자신들의 책임을 부정하기에 급급했고 피해자들의 증언의 신빙성을 공격했습니다.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가해자들의 태도에 분노하는 한편 자신들의 피해성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군‘위안부’동원의 강제성과 불법성, 피해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가해자에 맞서기 위해 피해자들의 증언 중 일부가 변화되는 과정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본군‘위안부’로서 겪어야 했던 피해의 본질적인 내용은 결코 변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 할머니께서 세세하게 피해사실을 말씀하신 것으로 압니다. 가해자들이 하루 빨리 자신들의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법적책임을 이행하여 더 이상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가 훼손당하지 않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정의연은 더욱 더 최선을 다해 활동하겠습니다.   
 
2020년 5월 25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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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가 써왔다는 기자회견문 전문

역사기록|2020. 5. 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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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과연 이용수 할머니가 직접 쓴 글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용수 할머니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

저는 '위안부'였습니다.

그냥 '위안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대만 주둔 가미가제 특공대의 강제 동원 '위안부' 피해자였습니다.

해방 이후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제 삶의 상처를 대중에게 공개했던 것이 1992년 6월25일입니다. 차마 용기를 내기가 어려워 제 자신이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인 것처럼 당시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거짓으로 피해를 접수했었습니다.

이후 1992년 6월 29일 수요집회를 시작으로 당시의 참상과 피해, 그리고 인권유린을 고발하고, 우리 인류에게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른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문제 해결과 인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서로 간 존재도 몰랐던 우리 피해 할머니들은 각자 겪은 참상과 인권유린을 이야기하며 부둥켜안고 눈물로 아픔을 함께 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이 30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투쟁을 통해 손가락질과 거짓 속에 부끄러웠던 이용수에서 오롯한 내 자신 이용수를 찾았습니다. 먼저 가신 피해자 언니들과 함께 이 문제를 저 이용수가 꼭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양국 정부의 무성의와 이리저리 얽힌 국제 관계 속에서 그 결실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 기자회견과 입장문을 통해 지금까지 해 온 방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말씀을 감히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며, 앞으로 개선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제 기자회견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제가 기대하거나 예상했었던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30년 동지로 믿었던 이들의 행태라고는 감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당혹감과 배신감, 분노 등 여러가지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가지는 꼭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기자회견을 준비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일본의 사죄와 배상 및 진상의 공개, 그리고 그 동안 일궈온 투쟁의 성과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고백한 후, 참 힘든 세월을 지내왔습니다만 그럼에도 저는 이 길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부단히 다 잡아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부탁 아닌 부탁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현재 드러난 문제들은 우리 대한민국이 그동안 이뤄온 시민의식에 기반하여 교정되고 수정되어 갈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길에 ‘시민 주도 방식’, ‘30년 투쟁의 성과 계승’, ‘과정의 투명성 확보’ 3가지 원칙이 지켜지는 전제하에 향후 제가 생각하는 활동 방향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조속히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했던 많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한일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책임성을 갖고 조속히 같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두 번째, 지난번 입장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구체적 교류 방안 및 양국 국민 간 공동행동 등 계획을 만들고 추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한일 양국을 비롯한 세계 청소년들이 전쟁으로 평화와 인권이 유린됐던 역사를 바탕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고민하고 체험할 수 있는 평화 인권 교육관 건립을 추진해 나갔으면 합니다.

네 번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적인 교육과 연구를 진행하고 실질적인 대안과 행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구를 새롭게 구성하여 조속히 피해 구제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섯 번째, 앞서 말씀드린 것들이 소수 명망가나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정대협과 정의연이 이뤄온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역량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섯 번째,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개방성과 투명성에 기반한 운영 체계를 갖추기 위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사업의 선정부터 운영 규정, 시민의 참여 방안, 과정의 공유와 결과의 검증까지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깊은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그동안 이 운동이 시민의 지지와 성원으로 성장해 온 만큼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한 활동가, 그리고 국민 여러분 모두가 현재 상황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당혹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투쟁 과정의 문제들이 공론화되길 기대했던 것인데, 여러가지 문제가 드러나면서 그 과정이 복잡해질 듯 합니다. 제겐 운동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여러분이 계십니다. 먼저 한 발을 내디뎌 새로운 길을 열어오신 분들께서 밝은 지혜로 시민과 함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도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올해 93세입니다. 제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 이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력하게 당해야 했던 우리들의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그리고 미래 우리의 후손들이 가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응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그 길을 닦아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느 길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은 함께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를 위한 모두의 한 걸음을 이제 국민이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드림.

2020년 5월 25일 대구 인터불고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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