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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밤이 선생이다'에서 발췌

독서기록|2017. 4. 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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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 앞에서'라는 글.


(친일문인에 대해) 그러나 어떤 사정으로도 진실을 덮어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문학이 인간 의식의 맨 밑바닥까지 진실을 추구하는 작업임을 염두에 둔다면, 진실 가리기는 문학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되고, 그 작가들을 영원히 허위 속에 가둬놓는 일이 된다. 어떤 비평가는 작가의 윤리와 작품의 윤리를 구별해야 한다면서,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는 윤리적으로 순결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가 훌륭한 작품을 썼기에 훌륭한 작가로 인정된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이 예는 적절치 않다. 발자크는 자기 안에서 들끓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자기 시대 비판의 창조적 열망으로 바꿀 수 있었기에 훌륭한 작가로 성장하였다. 반면에 친일 작가들은 그들이 애초에 지녔던 창조적 열망까지도 메마르게 만들었다. 


우리가 미국을 거들어 베트남전쟁에 끼어들었던 일을 사과하기 위해 한국작가회의가 베트남 작가들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나도 그 방문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베트남 작가들은 우리의 방문을 고마워하면서도 크게 감동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기들이 승리한 전쟁인데 새삼스럽게 사과는 무슨 사과냐고 묻는 듯한 기색이었다. 우리에게도 이 승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친일의 상처에서 해방되려면 우리의 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이끌어야 한다.


분단된 민족의 우애를 되찾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더욱 높게 받들어져, 사회의 민주적 토대가 굳건해지면, 어떤 나쁜 기억도 우리를 뒤흔들 수는 없을 것이다. 앞 세대 작가들의 의미 있는 작품들을 우리가 떳떳하게 누리는 일은 그들을 미화하고 그 과오를 숨기는 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벌써 튼튼하다면 과거의 상처가 우리를 어찌 얽메겠는가.



'봄남은 간다'


김윤아 씨의 <봄날은 간다>에서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말할 때, 저 거짓 맹세는 이제 지킬 수는 없어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약속이 된다. 


아무리 아름답고 거룩하게 여겨야 할 것이라도, 그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이 세상에서의 그 실현을 곧바로 보장해주는 힘이 되는 것은 아니다.


두 번 다시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늘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아름답고 거룩한 일에 제 힘을 다 바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지 않는다. 그 실패담이 제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였다는 승리의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것들은 조금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라고 말하면서 간다.


김윤아 봄날은 간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금지곡'


나는 박정희가 죽은 다음해인 1980년 3월 마산의 한 대학에 정식 교원으로 임명되었다. 학교에는 부마항쟁의 주동자로 잡혀가 감옥 생활을 하다 돌아온 학생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몸집이 단단한 여학생이 하나 있었다.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 학생이 내 수업 시간에 했는 말을 나는 지금까지 잊어버리지 않았다. 정확하게 이런 말이었다. "군사독재가 없었더라면 팝송이 발달해도 얼마나 발달했겠어요."


'영어 강의도 사회문제다'


생각이 발전하고 지식이 쌓이면 말도 발전한다. 내 경우를 예로 든다면, 내 전공분야에서 선배 교수들이 반세기 전에 쓴 책을 지금 읽으려 하면, 프랑스어나 영어로 된 책을 읽기보다 더 힘들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은 선배들의 능력이 부족해라라기 보다는 당시의 우리말이 그들의 지식과 생각을 담거나 격려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데 더 큰 원인이 있다.


'태백 석탄 박물관'


그 거대한 박물관은 우리 역사의 화석이었다. 그 무심한 돌들은 거기에 지긋하게 눈길을 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 마음을 타고 물이 되어 흘러나온다. 울고 나오는 영화관은 많지만 울고 나오는 박물관을 다른 데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 과거를 영예롭게도 비열하게도 만드는 것은 언제나 현재다.


'금지곡'


유신시대의 독재자도 국민들을 나태와 방종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착한 생각이 마음 속에 가득했을 것이다. 그는 인간이 저마다 스스로 성장하고 스스로 다스릴만한 판단력이 있다고 믿지 않았을뿐더러 그런 능력 자체가 위험하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이 먹고 입는 것을 간섭했고,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정했으며, 부르는 노래를 감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불러야 할 노래를 스스로 만들어 가르쳤다. 그는 우리가 저마다 살아야 할 삶의 목표를 정해주었지만, 사람들은 날마다 불안했고 나날이 주눅이 들었다..


'시가 무슨 소용인가'


자신에게 특별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 곧 시를 쓸 수 있는 천부적 재능이 있다고 믿었기에 불행해진 사람들은 우리 시대에도 많다. 전답을 팔아 일곱 권의 자비 시집을 내고 파산한 사람도 있다. 잘 나가던 직장을 버리고 시 쓰기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은 결과로 가족을 읽고 떠돌이가 된 사람도 있다. 시만 쓰지 않았으면 똑똑했을 사람이 어쭙잖은 시를 써서 바보 소리를 듣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극심한 열등감에 시달리면서도 귀신 들린 듯 날밤을 새워 말을 고르는 사람들이 그 수만큼 많다. 그것이 시의 전통이기라도 한 것처럼 시마(詩魔)라는 말이 예부터 존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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