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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개에 대한 이야기

역사기록|2018. 2. 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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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비루함과 비천함의 상징이기도 해 인간과 삶을 함께 하는 반려의 수준에 오른 것은 최근의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개 이야기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대부분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의 비유이거나 개 때문에 당한 봉변이다.


조선의 임금들 중에는 태종과 연산군이 유난히 개를 좋아했다. 태종실록 1402년 4월 1일 첫 번째 기사는 개를 좋아하는 임금 때문에 벌어진 논쟁이다. 사인(의정부 정4품) 이지직과 좌정언(사간원 정6품) 전가식이 상소했다. “사가에서 하셨던 것처럼 매와 개를 아직도 좋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곧 신민(臣民, 관리와 백성을 아우르는 말)들이 실망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검약을 숭상하시고 방탕한 욕심을 경계하셔야 합니다.” 태종이 발끈했다. “비밀리 아뢰어도 될 걸 글로 써서 역사에 남게 하다니, 이런 괘씸한지고.” 이에 사헌부 지평(사헌부 종5품) 이지가 즉각 처벌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신 등은 전하의 과실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데, 거짓으로 성상의 불미(不美)함을 드러내어 실덕(實德, 참되고 진실한 덕성)을 훼손하였으니 멀리 귀양을 보내게 하소서.” 그러나 임금은 “간관(諫官, 사간원 관리)이 임금의 과실을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용서했다.


사도세자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견도(출처: 국립고궁박물관, http://www.gogung.go.kr)


졸지에 아첨꾼이 된 이지가 사직서를 던졌다. 체면을 구긴 사헌부가 4일 후 기관명의의 상소문을 올렸다. “언관이 임금의 과실을 고함은 그 직분이고, 이를 용서한 것은 임금의 지극한 덕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상소는 사실이 아니며, 이를 사책(史冊)에까지 남게 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신 등을 아첨하는 것으로 여기신다면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듭된 상소에도 임금이 뜻을 굽히지 않자 이지가 지신사(승정원 정2품) 박석명을 통해 셀프 중재안을 냈다. “상께서 이미 면죄해 준 것을 번복할 수는 없을 테니, 그 둘의 휴가 처리를 건의하시면 어떨까요?” 임금이 “옳다”를 연발하며 건의대로 수용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 이후로도 중국 사신이나 신료들에게 사냥개를 수시로 하사했고, 좋은 개를 진헌(進獻, 임금에게 예물을 바침)하면 뛸 듯이 기뻐하며, 벼슬이나 돈을 내렸다. 실록 1412년 2월 19일 기사는 계림부윤 윤향이 사냥개를 바치자 그 뜻이 가상하다고 칭찬하며 저화(楮貨, 1512년까지 유통되던 지폐로 1장 당 당시 가치는 쌀 2말 상당) 40장을 내려 주었다는 기록이다.


한 때 세자였던 양녕대군도 아버지 태종 못지않게 개를 좋아했다. 태종실록 1414년 9월 7일 기사는 세자가 몰래 강아지를 구했다가 곤욕을 치른 내용이다. 임금이 물었다. “세자가 남편 없이 여자 혼자 사는 집에서 강아지를 구했다는데, 사실인가?” 조사 결과, 세자의 부탁으로 상호군(정3품 무관) 황상이 대호군(종3품 무관) 권초의 집에 좋은 개가 있다 추천했고 이를 구하게 된 것. 그런데 마침 집주인인 권초가 지방근무 중이어서 세자가 강아지를 얻으려 혼자 사는 과부 집을 드나든 것으로 잘못 전해져 임금의 화를 돋운 것이었다. 임금이 승정원에 전교했다. “황상, 너는 개국공신의 아들이어서 내가 장차 크게 쓰려했는데, 진실로 실망했다.” 이를 전해들은 세자가 황상에게 많이 미안해했으나, 다른 신료들의 충고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세종이 즉위한지 10년이 되던 해이다. 세종실록 1428년 2월 17일 기사인데, 김효정과 황보인이 임금의 형인 양녕이 개를 기른다며 처벌을 요구했다. “성상께서 형제의 우애를 지키려 염려하는 것은 알고 있으나, 공의(公義, 공정한 도의)를 위해서는 처벌하여야 합니다.” “내가 이미 매와 개를 키우지 못하도록 명하였소. 경들은 어찌하여 내가 들어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이토록 오랫동안 내 귀를 아프게 하는 것이오.” 이후로도 개 키우는 양녕의 처벌을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번번이 무산되었다.


이들 부자(父子)가 신료들의 핀잔을 들으면서까지 개를 키운 것은 당시 최고급 레포츠였던 사냥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사냥개는 중국 황실까지 소문이 난 것 같다. 실록에는 중국이 진상품목으로 개를 요구한 기록이 무수히 많은데, 대부분이 애완견이 아닌 사냥개인 것으로 해석된다. 세종실록 1433년 12월 6일 기사는 중국 사신이 황제의 요구를 빙자해 개를 구하려다 들통난 이야기이다. 임금의 명으로 좌승지 김종서가 중국 사신을 문안했다. 이 자리에서 사신 맹이 말했다. “내가 어제 요청한 매와 개를 오늘은 꼭 전하께 아뢰어 주시오. 비록 황제에게 전하는 것은 나지만, 전하의 정성이라는 것을 다 알 것이오.” 그러나 사신에게 속아 넘어갈 김종서가 아니었다. “황제의 칙서(勅書, 임금의 훈계나 지시 글)를 보여 주시오. 전하께서는 칙서가 없으면 아무것도 듣지 않습니다.”


세종실록 1443년 7월 1일과 단종실록 1453년 10월 3일 기사도 중국이 개를 요구한 진상물목과 관련한 내용이다. 전자는 우의정을 지낸 노한(盧閈)의 졸기(신료가 사망하면 쓰는 인물평)이다. 중국의 매와 개 요구량이 해마다 늘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는데, 노한이 중국사신 접대에 능해 요구량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어느 한 해에는 어머니 병환으로 접대할 수 없게 되었는데도, 임금의 부탁으로 낮에는 사신 접대, 밤에는 어머니 병수발을 들었다는 것이다. 후자는 매와 개를 더 이상 중국에 보내지 말자는 병조참판 이계전의 제안이다. 이로 보아 우리나라 사냥개가 중국이 선호하는 주요 물목 중 하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세종실록 1431년 7월 17일 기사는 병조의 보고로 군견으로도 쓰였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경기 66, 충청 9, 경상 42, 전라 59, 황해와 강원이 각 3마리씩을 길러 이를 진헌하면, 각 도의 영진(營鎭)에 40마리씩을 배정할 계획이다. 그런데 현재 사육현황으로는 진헌 수량에 많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각 도는 배정된 수량에 문제가 없도록 사육에 힘써 달라.


집현전 학자 양성지가 편찬한 「황극치평도(皇極治平圖, 임금의 통치 원칙을 요약한 그림)」에서는 임금의 정심(正心)을 위해 매와 개를 멀리하라고 했지만, 이는 임금이나 세자에게 이른 것으로, 응방이나 각 도의 영진에서는 사냥과 경계에 널리 쓴 것으로 생각된다. 단종실록 1454년 9월 29일 기사는 임금이 소릉(현덕왕후 권씨 능)에 제사를 위해 행차했을 때 경기감사 안숭효가 매와 개를 진상했다는 기록이다. 성종실록 1491년 2월 1일 기사도 진상에 관한 것이다. 경상도 관찰사가 전례대로 개를 진상하자 주상이 전교했다. “봄철 농사일이 한창 시작되는데, 평안도와 영안도에는 적의 변고까지 많으니 진상하지 말도록 하라.” 이밖에도 실록에는 사냥개 진상에 관한 기록이 많은 것으로 보아 주요 진상품이었음이 확실해 보인다.


연산군의 개에 대한 집착은 역대급이었다. 실록 1501년 3월 15일 기사는 어가 행차에 관한 임금의 전교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임금의 행차에 개가 동원되는 대목이다. 내일 행차할 때 응방의 개 10마리를 청로대원(淸路隊員, 임금 행차 시 행렬 앞에 서는 군졸) 10명이 좌우로 나누어 끌고 가라는 것이다. 같은 해 5월 6일 기사는 영의정 한치형의 건의이다. “궁궐 안에 전하께서 기르는 개가 너무 많아 때로는 조회 때 대신들 사이를 개들이 함부로 드나들어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수효를 줄여 주시옵소서.”


급기야 7월 1일에는 대사헌 성현이 목숨을 걸고 상소했다. “일찍이 성종께서도 응방(鷹坊, 매 사육을 담당하는 관청)을 설치하여 새끼 매를 기르다 신하들의 충언을 받아들여 모두 놓아 주신 일이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궁궐 안에 응방을 만들어 노비를 시켜 지키게 하고, 쌀을 먹여 사육하니 매가 궁궐 위를 떼지어 날고, 개가 뜰을 무리지어 다니며 짖어대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쓰시려는 겁니다. 이제는 금수 기르기를 금하시고 마음을 바로 잡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신료들의 상소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육두수는 더욱 늘어 1502년 2월 5일에는 일본 사신들이 보는 앞에서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의정부가 보고했다. “오늘 아침 백관이 반열에 늘어섰을 때 사냥개가 이리저리 뛰어 다녔습니다. 때마침 들어 있던 일본 사신들이 보고 있어 민망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지금 이후로는 사냥개를 내놓지 못하게 하소서.” 그러나 임금의 조치는 사육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를 처벌하라는 것이었다.


1505년 9월 14일 기사는 전전관(典錢官, 응방 전담관원) 4명을 임명한 것인데, 이 관원의 임무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이 때 응방에서 기르는 매와 개가 몇 만 마리를 헤아렸고, 온갖 진기한 새와 짐승을 키웠으며, 남쪽에는 큰 연못을 만들어 거위와 오리를 길렀는데, 모두 전전관의 몫이었다. 궁궐에서 몇 만 마리의 매와 개를 키우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했을까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많았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출처 : http://theme.archives.go.kr/next/pages/new_newsletter/2017/html/vol_76/sub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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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계류 중인 민간인학살 관련 법안들

역사기록|2015. 9. 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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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현재 국회에는 3건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및 보상 관련 법안이 계류 중에 있다.


제일 먼저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2013년 10월 11일 발의한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있다.


이 법안에는 진선미, 이상직, 박원석, 윤관석, 박수현, 전순옥, 박지원, 원혜영, 윤호중, 심상정, 김제남, 정진후, 최원식, 장하나, 김광진, 김민기, 서기호, 임수경, 홍영표, 강기정, 김동철, 강창일, 부좌현, 이종걸, 이학영, 은수미, 신학용, 우상호, 인재근, 박영선, 김재윤, 민병두, 이해찬, 문병호, 설훈, 노영민, 김현미, 이석현, 홍종학, 최재천, 이인영, 남인순, 홍의락, 김태년, 서영교, 김기준, 우윤근, 최민희, 유인태, 유은혜, 박홍근, 박범계 의원(52인)이 함께 발의자 명단을 올렸다.


1907253_의사국 의안과_의안원문.hwp


1907253_안전행정위원회_검토보고서.hwp



유족들이 5일 창원 위령제 행사장 앞에서 과거사 기본법 서명을 받고 있다.


두 번째로는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발의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있다.


이 법안에는 이재오, 전순옥, 이주영, 이만우, 신성범, 김재경, 김용태, 진영, 김영우, 김기선, 조해진, 박덕흠, 이군현, 성완종 의원(14인)이 발의자 명단을 올렸다.


1907794_의사국 의안과_의안원문.hwp


1907794_안전행정위원회_검토보고서.hwp



세 번째는 4성 장군 출신의 경주 지역구 국회의원 정수성 의원이 발의한 개별법안 '경주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이다.


여기에는 정수성, 정희수, 박명재, 장윤석, 이노근, 류지영, 나경원, 정갑윤, 이채익, 이운룡, 홍지만 의원(11인)이 발의자로 되어 있다.


1915473_의사국 의안과_의안원문.hwp


1915473_의사국 의안과_비용추계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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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다짐비가 저잣거리에 선 까닭

역사기록|2015. 9. 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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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초모조형물이 우여곡절 끝에 마침에 오동동 문화광장 입구에 세워졌다. '인권 자주 평화 다짐비'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렇다. 추모조형물은 저잣거리에서 뭇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영웅의 동상이 아니라 행인들과 같은 높이에서 마주보거나 어깨동무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산합포구 해운동 방송통신대 학습관 옆 근린공원에 생뚱맞게 서 있는 부마항쟁 기념조형물을 보라. 왜 그것이 거기에 서 있는 지 아무도 모른다. 그 장소와 부마항쟁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 왜 거기 서 있을까? 마땅히 세울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야말로 생뚱맞은 조형물이 됐다.


다짐비는 다르다. 학생과 시민과 취객들도 왜 다짐비가 오동동에 서 있는지 안다. 그래서 더 가슴아파한다.






제막식 당일 나눠준 행사 팸플릿이다. 다짐비를 세우는데 힘을 보탠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학생들이 자연스레 다짐비의 여성과 같은 포즈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학생들과 선생님의 단체사진을 한 시민이 찍어주고 있다.





다짐비 건립 성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다짐비 바로 앞 길에는 1960년 3.15의거 발원지를 알리는 동판이 있어 의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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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일본군 '위안부' 추모조형물 설립취지문

역사기록|2015. 8. 25.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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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단계 과정을 거쳐 최종 이렇게 결정했다.


설립취지문


20세기 초 마산은 일본제국주의의 조선 침략 기지이자 수탈도시였다. 또한 일제의 침략전쟁 당시 일본군 ‘위안부’ 동원을 위한 중간집결지였다. 경남 각지에서 끌려온 수많은 여성이 마산을 거쳐 중국과 동남아 등 일본군의 전쟁터로 배치됐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조선을 비롯한 전쟁점령지의 어린 여성들을 제국주의 군인의 성노예로 삼은 20세기 최대의 반인륜·반인권 국가범죄이다. 그렇게 인간의 삶을 무참히 유린한 일본 정부는 70년이 지나도록 사죄와 배상은커녕 인정조차 않고 있다. 한국정부와 사회도 그들의 피해와 고통을 외면해왔다. 


이러한 일본의 책임을 끝까지 묻고, 우리의 과오를 반성하면서,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며, 평화와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미래세대에 전하기 위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일제 수탈의 현장이자 반제국주의 항일독립운동은 물론 해방 후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던 이곳에 인권 자주 평화 다짐비를 세운다.


2015년 8월 15일 


일본군위안부창원지역추모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




조형물 안내


이 조형물은 일본군 ‘위안부’로 참혹한 고통을 겪은 소녀를 통해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비장하고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꽉 쥐고 있는 두 손은 지키려는 의지를 나타내며 천은 한과 희망,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의미한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우리 국민들의 제대로 된 이해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얼굴 표정에서 발가락 끝까지 역사적 증인으로서의 긴장감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참여작가 : 하석원, 조란주, 윤귀화, 한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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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애국지사추모사업회가 발족한단다

역사기록|2015. 4. 1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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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권 전 마산시의원이 만나자고 했다. 나갔더니 사단법인 창원시애국지사추모사업회 배한국 사무처장이라는 분과 함께 있었다.


특이한 단체였다. 자치단체 단위로 그 지역 출신 애국지사 모두를 추모하는 사업회는 들어본 바가 없다. 물었더니 창원시가 최초란다. 창원시 출신 애국지사는 모두 87명이다.


알고보니 2008년 김정부 전 국회의원이 앞장서 마산합포구 삼진의거대로 81-15에 건립한 '애국지사 추모사당'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서울에 거주하던 마산 출향인 14명이 '마산애국지사기념사업회'를 만들어 매년 버스를 대절 내 3월 1일 추모제례를 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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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례의 주최는 마산시였지만, 삼진 지역에 있는 팔각회라는 단체에 위탁해왔고, 올해까진 팔각회가 주관했지만 내년부턴 창원시애국지사추모사업회가 주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2014년 3월 법인설립 추진위원회가 발족됐고, 2015년 1월 13일 국가보훈처로부터 법인 허가를 얻었으며, 이번 4월 22일 사보이호텔에서 정식 창립총회를 한다.



법인설립 자금은 이진 이사장이 1000만 원, 조정환 진종신 부이사장이 각 500만 원씩 추렴했다고 한다.


사업계획을 보니 추모제례와 추모음악회, 백일장, 사생대회, 웅변대회, 체육대회, 각종 교육사업, 세미나 토론회, 포험 등 개최, 국내외 항일유적지 순례 및 답사, 유족 생활비 지원, 유족자녀 장학금 지원, 애국지사 사료 발굴, 4.3 삼진의거 성역화 사업 등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4월 22일 창립총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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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MBC 김재철 전 사장의 죄상

역사기록|2014. 1. 2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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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판결문이 곧 김재철 전 문화방송 사장의 죄상이로군요. 기록삼아 '판단' 부분을 올려둡니다. 김두식 교수의 페이스북에서 옮겨왔습니다.


☞판결문 전문 보기 :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291795757634950&id=100004135838367


가) 이 사건 파업의 목적의 정당성 여부


⑴ ‘공정방송 확보’ 요구 부분


살피건대, 앞선 인정사실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보면, 이 사건 파업 직전까지 김재철을 비롯한 원고의 경영진은 기존에 합의된 단체협약에서 정한 공정방송 실현을 위한 규정들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작자와 상의 없이 임의로 방송 출연자를 변경하는 등 프로그램을 임의로 변경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정권을 비판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의 방송 제작을 거부하고, 다양성과 중립성을 유지하여야 할 자신의 의무를 위반한 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오로지 자신의 뜻에 따라 방송을 제작하지 않았거나 자신의 뜻과 다른 내용의 방송을 제작하려고 하였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방송 제작자의 보직을 변경하는 등 인사권을 남용하였고, 그와 같은 방법으로 원고 내부에서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위축시켜 다양한 의견을 억압하는 한편, 경영자의 가치와 이익에 부합하는 방송만을 제작, 편성하려 시도하였다. 

원고 측의 이와 같은 행위는 단체협약을 위반하여 근로조건을 악화시킨 것일 뿐 아니라 방송법 등의 관계법령에 의하여 인정된 공정방송의 의무와 법질서를 위반한 것이고,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에서 피고 노조가 원고의 개별 단체협약 위반 행위에 대하여 사법적 구제를 청구한다고 하더라도 방송의 자유와 공정방송 확보를 위한 실효적인 구제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아가 피고 노조가 원고에게 요구한 공정방송 사수는 단순히 원고에게 기존 단체협약에서 정한 의무의 이행을 촉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위법상태를 시정하고 새로이 공정방송을 실효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조치를 협의하자는 요구이므로, 어디까지나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을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에 해당하여 그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① 특정한 뉴스의 보도 여부나 특정한 방송프로그램 주제의 선정, 출연자의 교체 등은 방송제작 담당자의 전문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서, 그러한 판단의 결과만을 들어 방송의 공정성이 침해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원고의 근로자나 사용자는 그와 같은 결정에 대해 방송제작 업무 종사자의 관점에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이 경우 제기된 문제점이 당사자가 합의한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결되었을 때 비로소 방송의 공정성이 준수되었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② 그런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의 단체협약은 공정방송협의회 운영규정 등 노사의 협의로 방송의 공정성에 관련된 다툼을 해결하고 공정한 방송의 실현을 도모할 수 있는 절차적인 장치들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원고의 공정방송협의회 운영규정은 동 협의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하고,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보직변경 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이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사장이 이에 응하지 않을 수 있는 재량권을 인정하는 등, 경영권에 속하는 인사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③ 그러나 원고는 2010년도 하반기 단체교섭 당시부터 공정방송협의회 규정 중 보직변경 요구권에 관한 사항의 개정을 시도하여 왔고, 그와 같은 시도가 무산된 이후 2011년 한 해 동안 위 규정에 따른 정례 공정방송협의회를 단 한 차례도 개최하지 않았고 피고 노조의 임시회 개최 요구에도 대부분 불응하여 사실상 공정방송협의회를 유명무실하게 하였다. 특히 2011. 11. 3. 개최된 마지막 공정방송협의회에서 원고의 사장인 김재철이 불공정 보도 문제의 재발방지를 약속하였으나 그 직후 한미 FTA 반대시위 보도 등과 관련하여 유사한 문제가 재발하였음에도 그때부터는 노사합의를 위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고, 나아가 2012. 1. 5.경 기자회 및 영상기자회가 보도본부장 등에 대한 불신임 투표에 착수하자 이를 이유로 기자회장 등을 보직해임하고 징계절차를 개시하였다.


④ 또한 원고가 이 사건 파업 시작 전까지 'PD수첩‘ 등 일부 프로그램의 제작진을 근무평정 등 객관적인 근거 없이 좌익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대거 교체하였고, 광우병 관련 ’PD수첩‘ 프로그램의 명예훼손 여부에 관하여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었음에도 그 제작담당 PD들에 대해 정직 등의 징계처분을 하였다가 법원에서 그 무효를 확인하는 판결을 받기도 하였으며, 방송 주제 선정 문제로 제작책임자와 마찰을 빚은 일부 PD들을 기존 업무와 전혀 무관한 부서로 전보발령을 하였다가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원래의 보직으로 복귀시키는 등 스스로 인사권을 남용하여 노사 갈등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⑤ 나아가 원고의 사장 김재철 등 원고의 경영진은 합리적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방송보류를 지시하거나(4대강 사업 방송, KBS 도청 방송), 그로부터 각 방송편성책임자로 임명된 윤&& 시사교양국장이나 문** 보도국장 등도 별다른 이유 없이 후배, 동료 피디 등이 건의한 방송내용을 거부하거나(특히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언론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거절하였다는 점에서 스스로 편향성을 갖고 있다고 보인다) 사내 게시판에 올린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마저 문제삼는 등 원고는 지속적으로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막고 민주적 절차에 의한 다양한 가치의 포섭을 저해함으로써 스스로 방송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하여 왔다.


⑵ ‘김재철 사장 퇴진’ 요구 부분


㈎ 쟁의행위에서 추구되는 목적이 여러 가지이고 그 중 일부가 정당하지 못한 경우에는 주된 목적 내지 진정한 목적의 당부에 의하여 그 쟁의목적의 당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부당한 요구사항을 제외하였다면 쟁의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쟁의행위 전체가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9. 6. 23. 선고 2007두12859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외견상 경영권에 속하는 대표이사의 퇴진 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 쟁의행위라도, 그것이 오로지 대표이사의 교체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도모하기 위하여 필요한 수단으로서 주장된 것이라면, 대표이사의 퇴진 그 자체는 쟁의행위의 주된 목적 내지 진정한 목적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그러한 쟁의행위가 반드시 목적의 정당성을 결여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 이 사건에 있어서 보건대, 앞선 인정사실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보면, ① 피고 노조는 김재철 사장이 임명된 경위나 취임 직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발언 등 여러 제반 사정들에 비추어 원고 내에서 방송의 공정성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김재철의 사장 취임에 반대하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 2010년 하반기부터 원고와 단체협약 개정 협상을 진행하여 왔고, 김재철 사장의 연임 후인 2011. 10. 17. 원고와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등 평화적인 노사관계의 정립을 위해 노력하여 온 점, ② 반면 원고는 2011년 이후 단체협약에 따라 개최하여야 할 공정방송협의회 정례회를 단 한 차례도 개최하지 않고 피고 노조의 임시회 개최요구에도 제대로 응하지 아니한 점, ③ 2011. 11. 3. 개최된 공정방송협의회에서 피고 노조가 공정방송협의회 운영규정 제10조에 따른 보직변경을 요구하자 김재철이 추후 유사한 사태가 재발할 경우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라면서 강력하게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피고 노조 측에서도 이를 수용하여 보직변경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점, ④ 그럼에도 그 직후 원고의 내부에서 불공정 보도 등으로 인한 분쟁이 재발되었고, 나아가 2012. 1.초 기자회 및 영상기자회가 원고의 뉴스 프로그램 개선안에 반발하며 보도국장 등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실시하자, 원고는 이를 기화로 박성호, 양동암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하는 등 방송의 공정성에 관한 문제제기를 억압하려는 태도로 일관하였던 점, ⑤ 피고 노조는 박성호 등의 위 인사위원회 회부를 계기로 이 사건 파업 개시를 위한 절차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던 점, ⑥ 이 사건 파업이 개시된 이후에도 김재철 사장은 피고 노조의 대화를 거부한 채 회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이에 피고 노조는 ‘김재철 사장 찾기’ 운동을 벌이기까지 한 점 등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고 노조 서울지부가 이 사건 파업에 이른 주된 목적은 김재철이라는 특정한 경영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받고자 하는 데 있고,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상징으로서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조치를 약속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고 대화에도 응하지 않는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그러므로 이 사건 파업의 주된 목적은 방송의 공정성 보장에 있고, 사장 퇴진은 부차적 목적 또는 성실히 대화에 응하지 않는 사장에 대한 비난을 의미하는 것에 그치는 바 피고들이 이 사건 파업을 함에 있어서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였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파업은 그 목적에 있어서 정당하다.


⑶ 소결론

따라서 이 사건 파업은 그 목적에 있어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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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지게 위에서 유람하는 이은상

역사기록|2013. 8. 2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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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이은상.

그를 일컬어 '위대한 민족시인'이라며 추앙하는 무리도 있지만, '양지만을 좆아온 기회주의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관 정권의 독재부역자'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경남 마산에선 이은상을 추앙하는 무리들과 이은상을 단죄하려는 무리들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와중에 이런 사진을 보게 됐다. 지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박영주 형이 보여준 사진이다.



1938년이면 일제강점기이고, 그의 나이 서른다섯 살 때다. 사진은 그가 당시에도 얼마나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사진은 창신고등학교가 2002년 그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펴낸 '노산 이은상 선생'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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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지리산 결사대' 사건의 진상

역사기록|2013. 4. 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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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8월 20일 <경남도민일보>에 '10년만에 다시 쓰는 취재기'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다. 한국언론의 가장 추악한 오보로 기록된 만한 사건에 대해 바로잡는 취지에서 썼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과 보상심의위원회는 1991년 경상대 ‘지리산결사대 사건’으로 실형을 살았던 빈지태씨(34.당시 경상대 경제학과)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공식 인정했다. 10년전 ‘빨치산과 일본 적군파를 모방한 극렬운동권의 소수 전위부대’라는 딱지를 선사받았던 이 사건이 10년만에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게 된 사연은 무었일까. 당시 지역주간지 기자로 유일하게 현장에 있었던 기자의 취재기를 통해 이 사건의 진상을 알아본다.


1991년 10월 10일 오후 4시 30분쯤이었다. 기자가 급히 택시에서 내려 진주시 하대동 진주전문대(이후 문산읍으로 이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30~40여명의 경상대생들이 C동 101호 강의실에서 꿇어 않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에 앞서 기자는 진주전문대 총학생회장 선거를 앞두고 물리적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을 몇일 전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맞붙게 된 이 학교 총학생회장 선거 과정에서 주로 여학생들로 구성된 운동권측 선거운동원들이 상대측 운동원들로부터 숱한 폭언과 협박에 시달려왔던 것. 이에 따라 운동권측 선거운동원들은 “강간을 해버리겠다”“너희가 선거에 이기면 다 죽여버리겠다”는 공공연한 협박에 질려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선거분위기는 줄곧 운동권측에 유리하게 진행됐고, 이날 투· 개표가 끝날 4시쯤에는 운동권측의 당선이 거의 확정적이었다.(실제로 이날 투표결과 200여표차로 운동권 후보인 천재동(당시 24세)씨가 당선됐다.)


이같은 상황을 예감하고 있던 기자는 4시쯤 진주전문대에 전화를 걸었다. 평소 취재협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교지편집위원회나 학보사를 바꿔달라고 했더니 교환원이 머뭇거리며 “지금 통화가 안될 겁니다”고 하는 것이었다. 퍼뜩 스치는 게 있어 “싸움이 났죠?”하고 넘겨짚었더니 그렇다는 것이었다.


택시를 타고 이 학교로 가는 동안 기자는 흔히 일어나는 투표함 탈취 등 개표방해사건을 연상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본 상황은 전혀 딴판이었다.


강의실 바깥에는 수많은 진주전문대 학생들이 몰려와 있었고, 강의실 안에서는 각목을 든 건장한 체격의 청년들(비운동권 후보측)이 기세등등한 자세로 꿇어앉은 경상대생들의 ‘군기(?)’를 잡고 있었다. 고개를 들거나 자세가 흐트러질 경우 거침없이 발길질과 각목세례가 가해졌다.


이런 와중에 누가 연락을 했는지 후문 담장 바깥엔 경찰의 ‘닭장차’가 도착했다. 이 학교 교수· 학생들과 경찰이 모종의 협상을 벌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강의실에 ‘감금’당해있던 경상대 학생들이 예의 각목을 든 청년들의 감시를 받으며 머리에 양손을 올린 채 ‘오리걸음’으로 줄줄이 끌려 나왔다.


기자는 보기드문 이 광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눌렀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던 중 누군가가 “저새끼 뭐야”하고 고함을 질렀다. 순식간에 건장한 학생 10여명이 거친 욕설을 하며 기자를 에워쌌다.


“너 누구 허락받고 사진찍는거야.”

“취재기자인데요.”

“이새끼 지랄하고 있네. 죽으려고 환장했구만.”


순간 누군가가 카메라를 휙 나꿔챘다. 기자는 죽을 힘을 다해 카메라 어깨끈을 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한꺼번에 달려드는 청년들의 완강한 힘에 도리없이 카메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학생이 담벼락을 향해 카메라를 힘껏 던지려던 찰라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이 학교 교수가 달려와 학생을 만류했다. 그는 흥분한 학생을 설득한 끝에 필름을 꺼내 학생에게 넘겨준 후 빈 카메라만 기자에게 돌려줬다.


이 과정에서 끌려나온 경상대생들은 후문 담장 바깥에서 대기중이던 ‘닭장차’에 고스란히 인계됐다. 이렇게 연행된 학생은 33명.


상황이 종료된 후 기자는 처음부터 현장을 목격한 학생들을 상대로 취재를 시작했다.


선거 하루 전인 9일 진주전문대 선거유세 과정에서 양측 후보 지지자들간에 욕설과 폭언 등 다툼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진주·충무지역총학생회협의회(진충총협· 의장 이일균 경상대총학생회장)에 접수됐다.


이튿날인 10일 오전 진충총협은 이 학교 선거개표 후 폭력사태가 예상된다며 급히 경상대에서 사수대를 모집, 40여명을 진주전문대에 파견했다. 40여명의 경상대생들은 이날 오후 3시30분께 진주전문대에 도착, 개표장과 떨어진 강의실에서 이 학교 학보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4시께 운동권 후보의 당선이 거의 확정될 무렵, 갑자기 강의실 유리창이 깨지면서 앞문과 뒷문으로 15명 가량의 진주전문대 학생들이 각목을 들고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위협을 느낀 경상대생 중 한명이 비닐봉지에 싼 최루가루를 뿌렸고, 몇몇 학생이 강의실 밖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바깥에 있던 수많은 진주전문대생에게 포위당해 이들 역시 제대로 저항도 못해본 채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경상대생들은 천막가방 속에 넣어 간 쇠파이프를 미처 꺼낼 사이도 없이 모두 빼앗겼으며, 각목과 책상, 빼앗긴 쇠파이프 등에 의해 폭행을 당했다. 완전히 제압당한 경상대생들은 강의실에 꿇어앉은 채 진주전문대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이 학교에 들어온 경위 등에 대한 진술서를 썼다. 이 진술서와 쇠파이프· 최루탄 등은 모두 ‘증거품’으로 경찰에 인수인계됐다.


당시 기자는 재직중이던 <남강신문>(이후 진주신문으로 통합)을 통해 ‘언론보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진주전문대 사태에 대한 보도를 보고’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의 진상을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일간지는 이를 철저히 묵살했다.


'지리산결사대' 사건 당시 언론의 왜곡보도 살펴보니


기자가 현장에서 목격한 바와 같이 이 사건은 운동권 후보의 신변보호를 위해 진주전문대에 들어가 대기중이던 경상대생들이 오히려 비운동권측 지지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다. 따라서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경상대생들은 피해자쪽에 가깝다. 물론 이들이 쇠파이프와 불발최루탄 등 무기를 소지하고 남의 학교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폭력혐의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쌍방폭행이 돼야 옳다.


그러나 경찰의 발표는 전혀 달랐다.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보도한 <동아일보> 11일자 사회면 기사를 보자.


“10일 오후 5시반경 진주시 하대동 진주전문대 201호 강의실에서 진행된 이 학교 총학생회장 선거 개표장에 경상대 써클인 지리산결사대 소속 유형민군(19.경상대 무역과 1년) 등 대학생 33명이 쇠파이프와 최루탄을 갖고 들어가 20여분동안 난동을 부렸다. 경상대생들은 진주전문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운동권 후보인 천재동군(19.전자계산과 1년)의 낙선이 예상되자 선거무효를 유도하기 위해 강의실 유리창 2장을 깨고 들어가 최루탄 1발을 터뜨리고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이 기사는 짧은 2개의 문장 대부분이 오보로 구성돼 있다. 사실보도의 구성요소를 6하원칙이라고 할 때 이중 사실과 부합되는 것은 단 한가지도 없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우선 언제(when)에 해당하는 ‘오후 5시반경’이 틀렸다. 학생들간에 충돌이 일어난 시간은 오후 4시께였다. 또 어디서(where)에 해당하는 장소도 틀렸다. 경상대생들은 개표장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개표장과 다른 101호 강의실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누가(who)에 해당하는 난동과 폭력을 주체도 오히려 뒤바뀌었다. 무엇을(what), 어떻게(how)에 해당하는 행위도 잘못된 것이다. 주체가 바뀌었으니 유리창을 깨고 최루탄을 터뜨리고 쇠파이프를 휘두른 행위도 당연히 틀릴 수밖에 없다. 이유를 설명하는 왜(why)도 마찬가지다. 기사는 ‘운동권후보의 낙선이 예상되자 선거무효를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나, 실상은 그 반대였다. 심지어 천재동 후보의 나이도 안맞다. 그는 1학년이었으나 늦깍이 입학으로 실제나이는 24세였다.


이처럼 사실관계에서 오보투성이인 기사가 당시 모든 언론에 그대로 보도됐다. 조선.동아.중앙 등 전국일간지의 경우 취재기자가 진주에 없어 일방적인 경찰발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나 현지에 많은 취재기자를 두고 있는 지역일간지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신경남일보><경남신문><경남매일> 등 3개 지역일간지도 모두 경찰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 뒤였다. 당시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언론노보 10월 21일자는 이렇게 폭로하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14일. 이날 진주경찰서는 ‘지리산결사대’ 관련 보도자료를 진주 및 경남도경 기자실에 보냈다. 첫 보도때 이미 단추를 잘못 끼운 연합통신 진주주재기자가 또다시 확인없이 경찰측 보도자료를 그대로 기사화해 본사로 송고했다.(…중략…) 이날 오후부터 서울에 있는 지방담당데스크들이 일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연통기사를 서비스받은 이들은 ‘이렇게 좋은 재료를 왜 안보냈느냐’는 투의 전화를 해당지역에 했다. 이에 따라 경남주재 중앙지 기자들은 별다른 확인과정없이 경찰측 보도자료를 근거로 첫 보도겸 ‘결사대’ 속보를 작성해 본사로 송고했다.”


이에 따라 전국일간지와 양 방송사 등은 ‘폭력투쟁 앞세운 운동권 전위 / 경찰이 밝힌 ‘지리산결사대’ 정체’ ‘극렬.소수화 운동권의 전위대 / 경상대 ‘지리산결사대’의 정체’ 등 특집 해설기사 등을 일제히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같은 언론의 앵무새같은 보도에 힘입어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은 이들 경상대생 18명에게 대부분 폭력혐의를 인정, 유죄선고를 내렸다. 물론 진주전문대 학생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모두 19명 기소돼 유죄판결...6명은 실형


10년 전 노태우 정권 당시 학생운동 탄압을 위해 확대.조작된 대표적인 사건으로 지목되고 있는 ‘지리산결사대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당시 이 사건으로 구속기소돼 실형을 받았던 빈지태씨(34.당시 경상대 경제학과)가 최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과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공식인정 통보를 받은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경상대 민주동문회(회장 이영주) 등 관련단체와 당시 학생들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 것은 물론 학생운동권을 빨갱이로 덧칠하고 무시무시한 폭력집단으로 매도한 이 사건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리산결사대 사건’은 지난 91년 10월 10일 진주전문대 총학생회장 선거와 관련, 이 학교 운동권 후보측의 신변보호 요청에 따라 강의실에서 대기중이던 진주.충무지역총학생회협의회(진충총협) 소속 경상대 학생 40여명이 비운동권 후보측 학생들에 의해 경찰에 인계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경상대 학생들은 진주전문대의 특정후보측 학생들로부터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반면, 경찰은 오히려 이들 운동권 학생을 ‘타 학교에 난입, 난동을 부리고 폭력을 행사했다’며 폭력 및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에 따라 당시 19명이 기소돼 이중 6명이 1년~3년8개월의 실형을 받았으며, 나머지 13명도 집행유예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또한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및 일부 지역일간지는 경찰의 일방적인 발표를 그대로 보도하면서 ‘빨치산의 후예를 자처하는 학생들이 대대.소대.분대 등 군대조직을 갖춰 지리산에서 화염병투척훈련을 해왔다’며 이를 용공이적단체로 매도했으며, 난입.난동.폭행혐의에 대한 확인취재도 전혀 하지 않아 언론계 내부에서마저 ‘발표저널리즘에 따른 대표적 오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 함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빈지태씨는 “조선.동아일보 등 주요언론에서 우리를 비밀폭력조직이나 이적단체로 매도하는 바람에 한동안 경상대생 전체가 취업에 큰 불이익을 받았으며, 전국 모든 대학의 사수대가 폭력조직으로 된서리를 맞았다”면서 “이 문제는 한 개인의 명예나 보상의 차원이 아니라 당시 경상대와 한국 학생운동의 명예회복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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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있는 학자가 대중적 글쓰기도 잘한다면?

역사기록|2009. 2. 2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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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금) 서울대 인문학관에서 한국제노사이드연구회 동계워크샵과 정기총회가 열렸다. 제노사이드연구회란 그야말로 우리 역사에서 있었던 집단학살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공주대 지수걸 교수와 내가 각각 충북 영동지역과 경남 함양지역의 민간인 집단희생자에 대한 조사 결과와 조사 과정의 소감을 발표했다.


이어진 정기총회에선 지난 3년간 회장을 맡아오신 동아대 홍순권 교수에서 서울대 정근식 교수로 회장이 바뀌었다. 지난해에 이어 내가 감사를 맡게 됐다. 나는 지난해에도 감사였기 때문에 지난해 사업과 예결산에 대한 감사보고를 했는데, 기록차원에서 남겨두자면 다음과 같다.

감사보고서

-제한된 예산 한도 내에서 알뜰하게 살림을 잘 한 것으로 평가되며, 부적절하게 지출된 내역은 발견할 수 없었음.
-오히려 지출내역이 너무 알뜰한 나머지 집행부에서 사업을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음.

-또한 <제노사이드연구> 3호의 경우, 발송비가 2호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것으로 보아 어렵게 발행을 해놓고도 제대로 활용과 배포를 못한 게 아니냐는 걱정이 됨.

-특히 회원관리가 체계적이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회비를 낸 회원은 얼마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남.

-따라서 연구회보 발행과 배포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고, 회보 발송과 연계하여 회원들로 하여금 회비 납부를 권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됨. 회비 납부는 단순히 재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회원으로서 소속감과 권리의식을 높이는 동시에 활동에 참여하는 동기유발의 차원에서 연구회의 유지와 발전에 기여하는 필수요소임.

-이를 위해서는 연구회보를 반년간지 또는 계간지로 빠지지 않고 정기발행하겠다는 의지와 적극성이 요구되며, 월 1회 정도의 이메일 뉴스레터를 통해 제노사이드 연구동향을 회원들에게 알려주면 좋겠음.

-또한 이메일 뉴스레터에서는 매달 회비납부 내역과 납부한 회원 명단을 공유하는 것이 좋을것으로 생각됨.

-당장 오늘 총회 자리에서 회비의 액수와 계좌를 공지할 필요도 있음.

정근식 교수

지수걸 교수

홍순권 교수를 바로 찍은 사진이 없었다. 왼쪽의 웃고 있는 분이 홍순권 교수다.


워크샵과 총회를 마친 후 저녁식사 자리에서 '대중적 글쓰기'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홍순권, 정근식, 지수걸 교수가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처럼 대중적 글쓰기를 하셔서 책을 내 많은 대중들이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교수님들은 "논문 잘 쓰는 사람 따로 있고, 대중서 잘 쓰는 사람 따로 있다"며 "우리는 그쪽에 역량이 안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쉽다. 이들 홍, 정, 지 교수는 역사, 특히 한국현대사 분야에서 특출하신 분들이다. 대중들이 접하기 어려운 논문이나 학술서뿐 아니라 대중적인 역사책들을 내놓으면 왜곡되고 은폐된 근현대사를 바로잡는데 많은 도움이 될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다.

전갑생 회원이 찍어준 사진이다.

중국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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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주의자 되라고 강요하는 사회

역사기록|2008. 11. 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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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30·40대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가장 많이 들어온 삶의 지침은 뭘까? 아마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너무 앞에 나서지 마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우리 어머니는 내가 군에 입대할 때 이런 말씀도 일러 주셨다. "군대에서 줄을 설 땐 무조건 사람이 많은 쪽에 서야 한다더라. 그리고 너무 앞에도 서지 말고, 뒤에도 서지 말고 항상 중간에 서야 한단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친구를 협박할 땐 이런 말을 썼다.

"이 자식 사상이 꼬롬하네? 너 그러다가 정말 '골'로 간다."

요즘도 기자들 사이에선 큰 기사를 낙종했을 때 "물먹었다"는 표현을 쓴다.

'골로간다'와 '물먹었다'

'골로 간다''물먹는다'는 표현이 살육의 현대사에서 비롯된 말임을 알게 된 것은 민간인학살사건을 취재하면서부터였다. 해방 이후 6·25를 전후로 하여 사상이 '꼬롬(?)'한 사람은 모두 골짜기로 끌려가 총살당하거나 바다에 수장된 데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다.

만주군 장교 시절의 박정희.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희한하게도 나는 그때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박정희와 김대중이 유력한 후보였다. 아이들과 함께 초등학교 담벽에 붙은 선거포스터를 보던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빨갱이 나라가 된다카데?"

"그라모 큰일이네? 우린 이제 죽었다."

그 후 선거일까지 계속 악몽을 꾸었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어 괴뢰군을 이끌고 우리를 잡으러 온 것이다. 꿈속에서 나는 마루 밑에 기어 들어가 숨었다.

마침내 선거일이 됐다. 정말 불안했다. 투표를 하고 돌아오는 아버지를 붙들고 물었다.

"아부지. 김대중이가 대통령이 되면 우짭니까? 그 사람 공산당이라 카던데."

"걱정마라. 투표장에서 보니까 대중이 찍는 사람은 전부 찾아내서 다시 찍으라고 하더라. 그 사람은 안될끼다."

과연 그는 떨어졌다. 나는 휴우~ 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 후 중학생일 때였던가? 겨울밤 가족끼리 안방에 모여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박정희에 대한 얘기였던 걸로 기억되는데,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다. 아마 그에 대한 나쁜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때 가족 중 누군가가 갑자기 음성을 낮추며 이렇게 말했다.

"쉿! 조용히 해. 누가 들을라." 그러자 옆에서 모시를 삼고 있던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도 있지."

그때도 나는 더럭 겁이 났다. 벌써 누군가가 들은 것은 아니었을까? 또 악몽에 시달렸다. 경찰이 우릴 잡으러 오는 꿈이었고, 그때마다 마루 밑에 숨어 공포를 달랬다.

5.16쿠데타 거사를 치른 후 박종규(왼쪽), 차지철(오른쪽)과 함께 선 박정희.


초·중학생의 어린 마음에까지 공포를 심어주던 박정희도, '골로 간다''물먹는다'는 말을 만들어낸 이승만도 지금은 모두 저 세상 사람이 됐다. 그러나 그들의 계승자는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우리의 의식을 조종하려 하고 있다.

우익은 없다, 기회주의자만 있을뿐!

광복 63년을 맞은 지금, 그들은 이렇게 외친다.

"일제시대 친일 안한 사람이 어디 있나." "삶과 예술작품은 따로 평가해야지."

수십만명의 민간인을 재판도 없이 살육한 국가범죄에 대해서도 그들은 이렇게 강변한다.

"그때 그렇게라도 안 했다면 우리나라는 벌써 빨갱이 세상이 됐을 걸." "그러게 누가 앞에 나서래? 모난 돌이 정 맞은 거지 뭐."

아하! 우리 부모들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씀하셨던 '모난 돌…'은 결국 그 말이었구나. 강자 앞에 대들다간 '골'로 가게 되니 대세에 순응하며 적당히 목숨을 부지하라는 말씀이었구나.

얼마나 공포의 세월을 살아오셨으면 자식에게 '기회주의자가 되라'고 가르치셨을까.

그렇다면 지금 이승만과 박정희의 계승자들은 과연 우익일까, 그냥 머리 좋은 기회주의자에 불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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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호돌이 2008.11.03 2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인데.. 아직도 이놈의 멍청한 국민들은 딴나라당을 뽑아주니... 멍청한 종자들... 500년간 상놈의 자식들이었는데..역시.. 100년이 지나도 종놈의 근성은 없어지지 않는 구나..

    • Favicon of http://ㅇㅇㅇ.ㅇㅇ BlogIcon 하옹 2008.11.04 0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도 어렸을때 조센징 이런말 싫었는데

      괜히 쪽발이들이 그런말 하는게 아니더라구

      이 민족의 발전성은 없는것 같음

      임란이나 을사조약만 봐도

      뒤통수를 여러번 당했어도

      일본 좋다고 헤헤덕 거리는것 보면

      이 개한민국사회에 대한 증오를 느낌

  2. Favicon of http://ramazzoti@hanmail.net BlogIcon RAMAZZOTI 2008.11.04 0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구상에서 생명력이 가장 강하다는 바퀴벌레가 멸종했음 했지. 딴나라당과 알바들, 친일 분자들은 멸종 안될걸요~

  3. 심하다 2008.11.04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만있으면 딴나라당과 알바, 친일이니....

    다른 사람들한테 줏어들은 이야기 되뇌이지 말고 생각좀 하고 사시길....

    똑같은 논리로 당신에게 공산당과 김정일알바들, 빨갱이라고 단정짓는다면 이게 정상으로 보이나요?

    • 2008.11.04 0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치에 대한 제반적 지식을 갖췄다면 저런 말을 안되뇌이는 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똑같은 논리'라는 얘기는 상당한 모욕인데요.

      '딴나라당과 알바, 친일'이야 근거를 얼마든지 댈 수 있겠습니다만, 공산당과 김정일알바들, 빨갱이와 '당신'과는 관련을 찾기가 어렵네요.

      말씀하신 의도를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존중은 상대성, 다양성을 기초로 해서 비롯된 것이지, 옳고 그름, 시비의 영역에 있어서 그름을 존중하라는 건 터무니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Favicon of http://ㅇㅇㅇ.ㅇㅇ BlogIcon 개한민국 2008.11.04 0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런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박정희 추종하지..

      그냥 패쓰

  4. Favicon of http://ㅇㅇㅇ.ㅇㅇ BlogIcon 하옹 2008.11.04 0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정한 기회주의자는 꺼삐단리 박정희 장군이지..

    공산주의자, 친미주의자, 친일파 안해 본게 없다

    명예를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5. 역시 2008.11.04 0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라도가 최고죠^^

    우리 전라도의 아들 정동영님께서 대통령이 되셨어야

    우리 전라도가 사는데

    정말 이 울분은

    아무리 데모 나가도 풀리지가 않네여^^

    • 헉 무슨 정동영 2008.11.04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슨 정동영..미쳐..차리리 문국현이가 났고..권영길이가 났지..ㅎㅎ

    • 이거바라.. 지능형 안티네 2008.11.04 0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먼 정동영?

      먼 전라도?

      먼 데모?

      참.. 웃기시네. 지역감정 조장하지 마쇼 .

      딱보니 전라도인척 이상한말 하시는데 참나..

    • 가는구나 2008.11.04 0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타도어 하지마소. 전라도 인척하면서 은근히 지역감정조장하는 것은 정말 개념이 없이 하는 것이라요.

  6. 꺼삐딴 리 2008.11.04 0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는 우익도 없고 보수도 없어요..
    오직 자기 이익을 위해 뛰는 꺼삐딴 리만 있을 뿐...ㅎㅎ
    그리고 역대 최고의 꺼삐딴 리는 물론 박정희...

    그래서 박정희 잘 추종하잖아요..존경하는 대통령도 박정희..ㅎㅎ

    공부햇다는 대학생이나 농촌에서 농사 짓는 사람이나.
    산에서 삼캐는 사람이나, 사람 잡는 검사나..
    머리 속에 머가 있을 까 ??

    공부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머리 속에 생각하는 부분은 있을 까 ??

  7. 친일청산 2008.11.04 0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에는 대표적인 기회주의자가 있다.
    바로 친일파들이다.
    일제시대에 친일파들이 해방 후 미군정 하에서 다시 득세했다.
    그들의 기득권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어 왔으며 사회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다.
    윗물이 이리 썩어 빠졌는데 무슨 ...... 쯔쯔
    할 말이 없다.

  8. 매국노청산안한게정말 2008.11.04 0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나라의 권세를 휘어잡고 좌지우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거다 --

    과연 우리가 또 다른나라의 침략을 받는다면 목숨걸고 나라를 지킬 젊은이들이 나올수있을까?

    우리나라를위해 목숨바쳐 희생한분들은 3대가 가난하고 일본 뒤나 핥던 매국노들은 3대가 부자니 정말 분통터진다..

  9. 한국이.. 2008.11.04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대로된 선진국이 될려면 국민소득이 중요한게 아니라..
    국민의 마음가짐이 중요한데...한국은 아직은 한참 부족한듯...
    다음세대나 되야 길이보일까.,..

  10. 갱상 2008.11.04 1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남이가...

  11. 오호라 2008.11.04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는 모난 돌보다도 그 '정'을 없애버려야하지요...올바로 가려면.

  12. 장영철 2009.04.07 2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는만큼 보인다 했는데 국민이 무지하면 순전히 피해는 못가진자들에게 거의 돌아간다.특히 사회 시스템이 뿌리 내리지 못한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난데도 아직도 인물보단 혈연,지연,학연에 의해 지도자를 뽑고 있으니 불행의 씨앗은 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안타깝고,서글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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