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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하나뿐인 경찰관 공덕비

학살기록|2008. 6. 21.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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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1950년대 용화리 전경.

충북 영동군 용화면 용화리에는 아주 특이한 비석이 있습니다. '지서주임 이섭진 영세불망비'입니다.

이 경찰관은 상부의 지시를 거역하여 민간인 집단학살을 막은 분입니다. 경찰관에 대한 이런 종류의 비석은 아직까지 전국에 유일합니다. 또한 이 공덕비의 존재가 매체를 통해 알려지는 것도 이 포스트가 처음입니다.

민주지산 아래의 특이한 비석

이 비석은 죽음의 구렁텅이에 내몰린 지역 주민들을 자기 목숨을 걸고 살려 준 이섭진 지서장의 아름다운 인간애를 후세에 널리 전하고자 용화리 주민들이 십시일반 마음과 돈을 모아 세운 비석입니다. 살아난 사람들은 국민보도연맹원입니다. 그는 한국판 쉰들러였던 셈입니다.

56년간 비바람을 맞아, 글씨가 흐리지만 알아 볼 수는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支暑主任 李燮晉 永世不忘碑

剛明莅事 濟之慈仁 (강명이사 제지자인)
鎭玆一區 傍及外鄰 (진자일구 방급외린)
家家懷德 人人迎春 (가가회덕 인인영춘)
路上片石 永年不泯 (노상편석 영년불민)

-檀紀 四二八五年 十一月 十一日 住民一同-

지서주임 이섭진 영세불망비

강직하고 현명하게 일에 임하여 어질고 착한 마음으로 사람을 구했네
한 고을을 잘 다스리니 그 덕이 이웃에까지 미쳤도다.
모든 사람들이 봄을 맞이하듯 집집마다 그의 덕을 기억하여
비록 길가에 세운 조각돌일지라도 영원히 잊지 말자.

-1952년 11월 11일 주민일동-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섭진 지서장 영세불망비.


전국에는 한국전쟁기에 보도연맹원을 포함해 민간인학살 과정에 죽음을 면할 수 있도록 도와준 지역유지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세워진 비석이 몇 개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제주도 대정읍 하모리 진개동산에 마을 주민들을 살리는 데 공이 많은 김남원 면장과 조남수 목사의 공덕비입니다.

하지만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에 대한 공덕비는 이곳에 세워지지 못했습니다. 당시 예비검속 된 수 백 명의 지역민들을 살리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문서장의 공덕비를 함께 세우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희생자 위령비가 없는 상태에서 경찰출신의 공덕비를 먼저 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세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즉 보도연맹원, 예비검속자 등을 살려주어, 마을 주민과 유족들이 세운 경찰공덕비로는 '이섭진 영세불망비'가 전국에서 유일한 것입니다.

용화면 보도연맹원 30여명이 살아난 이유

전쟁이 발발하고, 대전이 함락되기 하루 전인 1950년 7월 19일 용화면 보도연맹원들이 모였습니다. 아침 일찍 순경이 마을에 와서 “보도연맹원 소집교육이 있으니 반드시 참석하라”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인 30여명의 보도연맹원들은 낮에는 돌로 지서울타리를 쌓는 작업을 하고, 밤에는 용화초등학교 뒤 창고에서 잠을 자게 됩니다. 바쁜 농사철에 1박 2일의 소집교육이 무척 불만이었지만, 내일이면 집에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잠을 청했습니다. 내일이면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린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사용자 삽입 이미지상촌면 상도대리 숯가마.사용자 삽입 이미지영동대 부근 석쟁이재.사용자 삽입 이미지영동읍 부용리 어서실.

용화면처럼 영동군 내 모든 읍면 보도연맹원들은 영동경찰서나 지서에 소집되어 하룻밤을 잔 후, 그들이 상상도 못한 일을 당합니다. 군인들의 총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영동군 내 300여명의 보도연맹원들은 7월 20일 영동읍내 어서실과 석쟁이재, 상촌면 고자리에서 집단학살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영동군에서 죽음의 골짜기로 끌려가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용화면 보도연맹원들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순전히 의로운 경찰 이섭진 지서장의 용기 있는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섭진 지서장(사진 우측).


전쟁 당시 용화지서장을 맡고 있던 이섭진은 1950년 7월 18일 오후에 영동경찰서장의 긴급호출을 받습니다. 경찰서에 도착해 보니 모든 지서장들이 참석해 있었습니다.

김경술 서장은 참석한 지서장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합니다.

“오전에 (이시환)도경국장과 특무대(CIC) 파견대장으로부터 지시받은 사항입니다. 내일 중으로 국민보도연맹원들을 모두 격리하라는 지시입니다. 오늘부터 유치장도 특무대가 관리한답니다. 전시 비상계엄 하에서 어쩌겠소. 군에서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남부 네 개 면은 황간지서로, 용화면은 용화지서로, 영동읍을 비롯한 나머지 여섯 개 읍면은 경찰서 수사계로 인계하되 황간지서장과 용화지서장은 지서나 창고에 이들을 집결시켰다가 특무대에 인계하세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교육소집이니 한사람도 빠져서는 안 됩니다. 바로 실행하십시오.”

지시사항을 들은 이섭진 지서장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결국 이 말은 보도연맹원들을 전부 처형하겠다는 뜻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불과 6개월 전에 정부에서는 과거 좌익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북한과 공산주의로부터 보호하겠다’라는 취지로 국민보도연맹을 만든 것이 아닌가? 또한 보도연맹원 대다수가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일자무식의 농사꾼들이지 않은가? 해방 후 격동기에 “농토를 나눠 준다”, “비료 배급해 준다”라는 이야기에 도장을 찍은 것이 남로당원 가입서이고, 농민회 가입서 였고, 이것이 자동으로 보도연맹 가입의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전향을 시켜 보호하겠다’라는 취지는 어디 가고, 모두 죽이겠다라는 것인지.....

이섭진 지서장은 부인 박청자와 상의 후에 자기 목숨을 걸고 서라도 보도연맹원을 살려 주어야 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7월 19일 오후, 보도연맹원 한 사람을 데리고 창고로 갔습니다. 창고는 일제 때 지은 것으로 나무 판자를 엮어 흙을 바른 목조 건물이었습니다. 낡고 허름했지만 30여 명은 수용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섭진은 널빤지를 구해다 허술하게 봉창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철사나 끈을 자를 수 있는 칼과 가위를 하나씩 창고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지서로 돌아오는 길에 이섭진은 동행한 보도연맹원에게 은밀히 당부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상촌면 고자리 현장과 유족들.


“무슨 일이 생기면 아까 막아둔 봉창으로 빠져 나와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게. 이유는 묻지 말고. 그리고 지금 내가 한 말을 절대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안 되네.”

이 이야기에 눈치를 차린 보도연맹원들은 그날 밤 모두 탈출을 했습니다.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었습니다.

용화면 보도연맹원 중에 죽은 사람들은 청년방위대원으로 전쟁 직후에 자원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처형을 당했습니다.

수복 후, 이섭진 지서장의 아름다운 행동은 순식간에 용화면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집니다. 1951년 말 이섭진은 매곡지서장으로 발령을 받는데, 이를 아쉬워하는 용화주민들은 지서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해 11월 11일 주민들은 이섭진 지서장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는 '지서주임 이섭진 영세불망비'를 세웠습니다.

/박만순(충북역사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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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헤메는 발길 2008.06.21 1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지서장님은 참 훌륭하시고 세세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십니다.
    공직자가 자기의 임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하기 보다 인간에 대한 존엄을 우선시 하는 행동은 오늘날의 검경찰도 꼭 본받아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3. 개구쟁이 2008.06.21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분을 경찰청장으로 만들어야하는데..어쩌고,,
    장하시네요
    존경스럽네요.
    우리민족의 우상이 되길..아니 경찰의 우상이길...

  4. 팔도사나이 2008.06.21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고향이 영동이고 친구집이 용화면인데..
    함 찾아가야 겠습니다..
    존경합니다~~

  5. 우리집강쥐바기 2008.06.21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정한 경찰이고 진정한 공무원이네요.

    지금도 묵묵히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계신 분들도 많겠지만...
    있는 현실을 보면 또 실망하는 경우가 더 많네요.
    저런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존경합니다.

  6. 이회창애비 2008.06.21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회창애비 비석있냐? 이놈들아?

  7. 살고싶은 한국인 2008.06.21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사람이 지금도 대한민국에 있어야 하는대 지금 있을까 없을까 내가 한번해보면은 좋을것같은대 정말로 그런 경찰이 단한명이라도 존재할까 정말로 궁금하내 내 생각은 없다로 결론을 짖어본다 있으면은 이리될까

    • 정일사랑 2008.08.26 0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경찰관이 아니시더라도 많으시죠.

      요사이 소방 공무원님들 자신의 일에 충실히 하시다가

      순직하시는분 이섭진지서장님 못지않게

      우리가 고마워하고 감사해야분들이네요.

      그 당시일들을 생각하니 맘이 넘아프네요. 일반 민간이이 아무것도 모르고 많이 죽었다는것이 맘아픔니다. 그와중에서 칭송할만한 경찰관님이 계셨다는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 눈물이 납니다.

  8. 객인 2008.06.21 1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덕비 : 선정(善政)을 베푼 감사(監司)나 수령(守令) 등이 갈린 뒤에 그들의 공덕을 기리어 그 고을 주민들이 세운 비석(碑石).

    절이나 기관에서 세워주는것은 이름만 공덕비이지 실제 뜻과는 괴리가 있습니다.
    지금 이 글쓰신분이 말씀하시는게 맞습니다. 이게 처음이 맞고 한개가 맞습니다.
    다른것들은 단체나 기관에서 감사의 뜻으로 세운것이고, 공덕비의 본래의 뜻을 가진것은
    저것밖에 없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9. 네이티 2008.06.21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은, 사람다워야 사람입니다. 요새는 사람다운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죠?

  10. 용궁물랫 2008.06.21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용인서장 공덕비도 있는데요 인터넷검색 곡성서장

    • 정일사랑 2008.08.26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이버 야휴에 발견 안되네요.자세히 주소를 써주시면 좋것네요
      그러구,공덕비가 하나건 두개건 열개먼 더 좋겠지만, 여기서 댓글로서는 의미는 별루네요

  11. 여인천하 2008.06.21 1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훌륭하신분입니다. 아마 격동기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렇게 노력하신분들이 많을겁니다.

  12. 광장 2008.06.21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글을 읽으며 좌우가 싫어진다.

    이분은 쉰들러 좌파의 귀감이며

    이분은 친일파 우파의 표상이다.

    필요하면 친일파요,필요하면 빨갱이니

    도대체 이사람의 근본은 무엇인가?

    살려고 하는짓에 그무슨 의미부여

    그것을 선현들은 곡학아세 표현하네

    독도수비 당연히 먹고살려 한일인데

    어느신문 독도수비 미역채취 운운하네

    먹고살려 땅지키지 명예타려 땅지키냐?

    지금은 그기사 찾을수도 없다네

    기사발굴 좋다지만 보도연맹 빼버리면

    이분은 영락없이 친일의 앞잡이네

    • 태린맘 2008.06.26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희 할아버지에 대해 그렇게 잘 아시고 하시는 말씀이신지..친일 앞잡이라고 하셨나요? 당시 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표현하시는게 지나치시네요..
      안타깝습니다..

  13. 은하수 2008.06.21 1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것을 알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제 고향 근처인데도 아직껏 그러한 사실이 있는지도 모른채 살아왔습니다... 고향가는 길에 한번 들러 그분의 덕에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할것 같아서...그리고 위 글을 빌려갑니다...

  14. 부사리 2008.06.21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에서 하나뿐이라는것은 님께서 모르시고 쓰신 글인것 같습니다.
    6.25사변때 지리산 일대에 빨치산이 활동 거점으로 삼아 맹위를 떨치고있을때
    지리산 화엄사를 중심으로 빨치산이 활동을 한다고 경찰 수뇌부에서
    화엄사를 불태우기로 결정을 하고
    소각명령을 내렸읍니다.
    그러나 당시 토벌대장이었던 차일혁총경은
    문화재를 소각하는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일이라고 하면서
    상부의 명령을 듣지않고 화엄사를 지켜냄으로써
    화엄사를 지킬수 있었기에 이에 고마움을 표하기위해
    화엄사 경내에 구례군민과 화엄사가 공동으로 공덕비를 만들어 세웠습니다.

  15. 또롱 2008.06.21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려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16. 태린맘 2008.06.24 14: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모가 daum블로그에서 할아버지 존함을 쳐보라고 하셔서 이 글을 만나게 되었어요..

    이 내용이 책으로 나오기전에도 엄마한테 외할아버지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어요..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을 땐 그저 엄마의 아버지이고 나의 외할아버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훌륭하신 분인지 나중에야 알았어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 엄마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시면서, 역사에 남을 훌륭하신 분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내용 외에도 할아버지가 크리스찬으로서 얼마나 믿음이 강한 분이셨는지,
    항상 약자의 편에서 방패가 되셨다는 말씀도 들었어요..
    그 뒤엔 늘 할머니의 기도가 있었다는 것도..

    책이 나왔을 때, 할아버지 일대기가 책으로 나왔으면 하셨던 엄마의 바램이 부분이나마 이루어진거 같아서 감사했는데, 블로그에도 기사화되어 더 감사한 마음이에요..
    할아버지의 공을 알려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처럼 적막한 세상에서 한 줄기 희망이 되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그게 할아버지가 실천한 사랑이니까요..

    엄마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워 하셨던 할아버지..저도 정말 자랑스러워요..
    천국에서 지켜보고 계실 엄마와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글 감사합니다..

    • 선산을 지키는 나무 2008.06.25 0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엄마가 돌아가셨군요. 가족은 너무 가까워서 늘 모르고 지나는 것이 있기도 하지요. 할아버지랑 엄마가 다른 영역에서 미소 띄우고 있을 것 같아요. 살아있건 그렇지 않건 다정한 가정이시군요...따뜻해서 참 좋아요..내내 행복하세요. 글고 좋은 가정 이루실 것 같아요^^

    • 정일사랑 2008.08.26 0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눈물이 납니다.

  17. 코알라 2008.06.24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린맘 누구인가?
    글로봐서는 내조카님인데.....
    오늘도 너희엄마 예기를 많이했고 안타까왔다.. 그리고 보고싶고.....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기뻐했을것을 ...

  18. 영민 2008.06.26 0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아버님의 이야기을 읽어주시고 뎃글을 달아주시고 관심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부모님께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셨읍니다 두분께서는 밤세워 눈물로 기도하시고 그일을 하셨읍니다 부모님 당신들을 위하여 기도하지아니하시고 그분들을 위하여 밤새워기도하셨읍니다 무척 두려웠다고 하셨읍니다 종교적인 차이점은 있겠지만 그순간 그런 결정을 하신것은 그분들의 하니님에 대한 믿음으로 선택하신일입니다 오해없으시기바랍니다 또 52년 매곡에서 또한번 기도하시며 실행하신일이있읍니다 책에는 나와있읍니다 그때도 목슴을 걸고 하셨읍니다 그리고 저희 부모님은 30세에 그일을 하셨읍니다 어머니는 만삭이셨구요 어머님은 금식하며 기도하셨읍니다 저희아버님은 절대로 친일파도 일본군앞잡이도 아니싶니다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관십 보여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정일사랑 2008.08.26 0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에서 최고로멋진 경찰관 아버지 어머님를 두셧네요.

      저두 멋진 이섭진 경찰관님이 계셨다는것이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합니다.

  19. 원형 2008.08.26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때나 지금이나 이념이 뭔지..
    참 ...눈물이 나네요...

  20. Favicon of http://교ㅛㅑㅐ BlogIcon 박진 2008.10.08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서장님의 그후 행적이 궁금 합니다

  21. 의산 2017.07.09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훌륭한 분.
    그런데 책 이름은 뭔가요?

눈길 끄는 지역신문의 촛불집회 특별판

역사기록|2008. 6. 2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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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해 6월항쟁 20주년을 맞아 1980년 봄부터~87년 6.29선언까지 경남지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취재해 [경남도민일보] 지면에 연재했던 적이 있습니다.

 87년 경남 6월에서 9월까지 항쟁의 기록

그 때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6월항쟁 당시 진주지역 시위를 담은 사진이 한 장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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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진주지역 대학생의 격한 시위는 서울 명동성당 농성이 해산된 후 소강상태였던 항쟁에 다시 불을 질렀다는 평가를 받을만 했습니다. 6월 17일 경상대학생들이 경찰의 동료학생 연행에 항의하며 남해고속도로를 점거하고 LPG수송트럭 2대를 탈취해 경찰과 대치한 사건은 전국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다음날인 18일 '최루탄 추방의 날' 행사에 다시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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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이 사진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당시 연합통신(현 연합뉴스)이 제공한 사진이 서울지역언론에 실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실은 신문이나 제공한 연합뉴스도 이 사진을 찾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당시 이를 취재해 보도했던 [경상대신문]도 사진을 보관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학보사 기자를 했던 이를 어렵게 찾아 연락해봤지만, 그 역시 사진이 없다고 하더군요.

결국 남아있는 것은 당시 신문에 보도됐던 흐릿하고 빛바랜 사진을 스캔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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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자료란 이런 겁니다. 당대에는 널리고 널린 게 자료인 것 같지만, 불과 10년, 20년만 지나도 대부분 멸실되고 마는 게 현실입니다. 아마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촛불집회의 각종 유인물과 자료집, 사진들도 수십 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특히 서울의 경우엔 그나마 낫습니다. 하지만, 소규모 지역의 경우 연일 개최되고 있는 촛불집회를 제대로 기록하는 블로거도 없고, 지역신문도 제대로 취재해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산된 기록물이 없으니, 보존할 기록물도 없는 셈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엊그제 집으로 배달돼온 주간 [진주신문]을 보고 감동받았습니다. 신문을 펼치자 타블로이드 8면 판형의 촛불집회 특별판이 끼여 있었던 겁니다.

지난 10일 열렸던 진주의 촛불집회 상황과 함께 촛불이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대통령과 정부가 뭘 잘못했는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또 10일자 일간신문의 주요 만평을 실었고, 관련 칼럼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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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것은 6월 10일 이전에도 진주지역에서 여러 번 촛불집회가 열렸는데, 그걸 역사기록 차원에서 전체를 정리한 기사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나마 특별판까지 만들어 보도한 신문은 경남지역에서 아마도 [진주신문]이 유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진주신문], 고맙습니다.

이왕이면 아래 자료실에도 사진과 기사 좀 올려주세요.
http://cafe.daum.net/chotbul (08년 촛불항쟁 역사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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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렇군요 2008.11.04 1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습니다. 정말 개념있는 훌륭한 신문이네요.

지역언론이여, 역사기록이라도 충실하자

역사기록|2008. 6. 2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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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 경남도민일보 지면평가위원회(위원장 정태진·교사)가 보다 못해 한 마디 했다. 명색이 경남지역 종합일간지라면서, 도내 10여곳에서 열리고 있는 촛불집회를 마산·창원 위주로만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일례로 밀양에선 그동안 10차례에 걸쳐 촛불집회가 열렸지만, 단 한 번도 지면에 보도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사실 그랬다. 마산·창원 외에도 진주·김해·거제·통영·밀양·의령·함안·창녕·고성·남해·하동·거창 등 대부분의 시·군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지만, 신문에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군사도시라는 특성으로 사회운동의 불모지라 부르는 진해에서도 지난 7일 '무려' 250여 명이 모인 촛불집회가 열렸다. 명색이 기자라는 나도 경남도민일보 지면이 아닌, '실비단안개'님의 블로그를 통해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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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에도 실리지 않은 진해의 7일 촛불집회를 전한 '실비단안개'님의 블로그 사진.


진해 같은 도시에서 250명의 시민이 모여 정권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면 가히 '역사적인 사건'이다. 87년 6월항쟁 때도 진해에서 시위가 있었지만 참여한 인원은 50여 명에 불과했었다.

경남도민일보뿐 아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더니 다른 지역신문들도 대동소이했다. 물론 신문이 기록하지 않아도 블로거들이 자발적으로 사진과 기사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서울과 대도시에 집중돼 있다. 농촌지역의 소규모 촛불시위는 블로그에도 오르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나는 지난해 6월항쟁 20주년을 맞아 80년대 경남의 민주화운동 역사를 26회에 걸쳐 연재한 바 있다. 당시 취재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기록의 부재였다.

그럼에도 가장 큰 도움을 얻었던 것은 당시의 지역신문과 대학의 학보·교지 등에 실린 기사였다.

당시 지역신문이 비록 논조는 시위대에 적대적이었지만, 각 시·군에서 있었던 시위자체를 누락시키지는 않았던 점은 놀라웠다. 최소한 사회면 귀퉁이에 1단으로라도 보도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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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당시 마산의 6.10대회를 전하고 있는 경남신문 1987년 6월 11일자 사회면 기사.


그러나 지금 많은 지역신문들은 팩트 자체를 누락시키고 있다. 이건 지역신문으로서 엄연한 직무유기다. 특히 집회나 시위에 대한 보도는 언론으로서 기본이다. 집회 참석자들은 다음날 신문에서 자신이 참석했던 그 집회가 지면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본능적으로 확인하려 한다. 독자에 대한 기본적인 서비스다.

지역신문들은 늘상 정치·경제·문화의 서울집중현상을 성토한다. 또한 서울지(소위 '중앙지')의 지역신문시장 잠식에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자기들도 본사가 소재해 있는 대도시 위주의 보도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지역 안에서도 작은 시·군은 이중으로 소외되고 있다.

오늘이 6월 9일이다. 촛불정국의 분수령이 될 6·10대회를 하루 앞둔 날이다. 지역에서도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한 달쯤 된 날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각자 자기지역 촛불집회 중간결산을 특집으로 꾸며보자. 이 특집에서 그동안 누락됐던 시·군의 작은 집회까지 모두 기록하자.

지역신문이 뭔가. 자기지역의 역사조차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는 게 신문이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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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항쟁'의 기록물을 남겨 주십시오

역사기록|2008. 6. 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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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전국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촛불집회는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후퇴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항쟁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는 87년 6월항쟁에 버금가는 촛불항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항쟁에 참여한 여러분이 곧 역사이며, 여러분이 외치는 구호와 손팻말, 펼침막 등 각종 시위용품이 곧 역사의 기록물입니다. 이 기록물을 여러분이 직접 남겨주십시오. 이 자료는 모두에게 공유될 것이며, 이후 설립될 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달할 것입니다.

○ 자료 올리기 : '08년 촛불항쟁 역사자료실'(http://cafe.daum.net/chot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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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직접 제작했다는 유인물도 생생한 역사기록물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시작된 촛불집회가 대운하와 공공부문 사영화 등 이명박 정부의 총제적인 정책에 대한 항쟁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민들은 경찰의 폭력진압과 언론장악 시도에서 드러난 '민주주의의 후퇴'에 분노하는 국민항쟁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는 20여 년 전의 '87년 6월항쟁'에 버금가는 '08년 촛불항쟁'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따라서 이번 항쟁에 참여하고 계시는 여러분이 곧 역사이며, 여러분이 외치는 구호와 손팻말, 펼침막 등 각종 시위용품이 곧 역사의 기록물입니다.

저는 미력하나마 한반도의 남단 경남 마산의 현대사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1945년 해방에서부터 1979년 부마민주항쟁까지의 지역사를 묶어 <토호세력의 뿌리>(2004, 도서출판 불휘)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또한 2007년에는 6월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80년부터 87년 6·29항복선언에 이르기까지의 경남역사를 모아 <80년대 경남의 민주화운동>을 26회에 걸쳐 연재한 바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안타깝고도 힘들었던 게 '기록과 자료의 부재'였습니다. 특히 서울이 아닌 지역의 자료 부재는 심각할 정도입니다. 6월항쟁 당시 진주지역 시위의 경우, 제가 어렵사리 찾아낸 단 2장의 사진 외에는 LPG 가스차량 탈취시위와 고속도로 및 철도 점거투쟁에 대한 사진들이 한 장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을 정도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세계적으로도 찬란한 기록유산을 남긴 우리의 선조들에 비해, 해방 후 이 땅의 위정자들은 기록물을 보존하기 보다 '파기'하는 데 오히려 골몰해 왔습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독재정권은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를 자신의 범죄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생각한 탓인지 철저히 증거인멸 정책을 썼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나라에는 도서관(Library)과 박물관(Museum)의 수만큼이나 많은 역사기록관(Archive)이 우리나라는 전국을 통털어 한두 개밖에 없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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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이 갖고 있는 손팻말도 역사기록물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독재에 저항해온 수많은 민주단체 역시 기록물에 관한 인식은 천박하기 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엄혹한 독재시절 유인물 한 장 때문에 감옥에 가야할 일이 비일비재했던 상황에서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게 조직보위의 한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몇 십 년 되지 않은 민주화운동의 기록조차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민주항쟁의 기록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지금 우리가 만들어나가고 있는 역사만큼은 풍부한 기록물로 남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 수많은 사진과 자료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이란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류하며 보존해두지 않는 이상 의미를 갖기 어려울 뿐더러 언제 멸실될지 모르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급한대로 다음에 '08년 촛불항쟁 역사자료실'(
http://cafe.daum.net/chotbul)이라는 카페를 열었습니다.

각종 기록사진과 손팻말, 펼침막, 유인물 등 기록물을 여러분이 직접 남겨주십시오. 유인물이나 손팻말은 스캔을 하셔도 좋고 사진으로 찍어올리셔도 좋습니다. 사진 용량은 다음카페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크게 올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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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들도 지하철 입구에서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다.

특히 서울지역보다 그 외 지역의 자료들이 더 소중합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보다 소규모 지역의 작은 투쟁이 더 소중할 수도 있지만, 그런 곳일수록 자료가 귀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료는 누군가 독점할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모두에게 공개하는 것으로 설정해두었습니다. 다만 자료를 올리실 땐 카페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회원가입을 하신 분만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자료는 모두에게 공유될 것이며, 가능하다면 이후 설립될 민주화운동기록관에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혹 웹상의 기록물 관리에 대한 더 좋은 의견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 자료 올리기 : '08년 촛불항쟁 역사자료실'(http://cafe.daum.net/chot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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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oulream BlogIcon 어울림 2008.06.05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야지요. 이 항쟁이 실패하든 성공하든(실패한다 해도 다시 항쟁이 일어날테니.. 이 정부는 오래 못갑니다) 자료를 남겨야 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역사니까요.
    이 글, 아고라랑 안티MB로 퍼가거나 링크 형식으로 연결시켜드리겠습니다.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oulream BlogIcon 어울림 2008.06.05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아예 카페를 만들어 놓으셨군요 ^^

  3. Favicon of https://geodaran.com BlogIcon 커서 2008.06.05 2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여학생 어제 서면에 있던 분 같은데요. 저도 측면에서 찍었습니다. 그리고 지공사님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있었습니다. ^^ 그래서 엇그제부터 보이는데로 모으고 있습니다.

  4. 웃기지도 않네 2008.06.05 2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치창조야 5년살다 왔다고? 내 친구 20년간 이민가서 살다가 잠시 귀국한 지난주에 만났다. 광우병 소라는 말 졸라 잘 알고 있고 버지니아 주에서 유사 광우병으로 사람 죽었다는 기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이야기 하더라.

    너야 말로 북에서 내려와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빨갱이 아니냐?

    너부터 조사해 보자.

  5.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_top_blogtop=go2myblog BlogIcon 실비단안개 2008.06.05 2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 한페이지에 촛불문화제 언론 뉴스와 블로거 뉴스를 계속 올리고 있는 중이며, 대운하 반대 티스츠 구입, 오늘은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현수막을 구입하였습니다.
    역사의 현장에 함께인 우리 - 공유가 가능하다니 좋으네요.

    따로 카페방문을 하겠습니다.

  6. 권근택 2008.06.05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입니다. 기사로 소개하겠습니다.

  7. 네이버가 짜증나서 왔는데 2008.06.06 0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자극적인 기사들 이젠 진절머리 난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수입 협상은 잘못이다

    하지만 재협상이 과연 가능할까?

    우리가 FTA에서 자동차 분야에서 이득을 보았다고 한다. 미국이 다시 하자면 하겠는가??자신들이 손해라서 안되겠단다. 이게 말이 된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과연 미국은 어떻게 할까?? 순순히 재협상에 응해줄까??

    아님 우리 정부의 다급함을 이용해 차후에 더 큰것을 해줄 조건을 내걸까???

    걱정이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재협상 물론 할 수 있다면 하면 좋겠다... 하지만 협상이라는 것을 주워 담으려면 더 큰 것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광우병 걸려있을 수 있는 소를 수입하는 것은 나도 싫다... 하지만 과연 재협상으로 인해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 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 교수님, 생고기 너무 잘먹었습니다

일상기록|2008. 5. 2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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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맛집 관련 포스팅을 자주 하니까 "저 놈은 돈 벌어서 다 먹어치우나?"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좀 그렇습니다. 다 먹어치우진 않지만, 그래도 맛있는 거 사먹는 데는 크게 아끼지 않는 편입니다. 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목적이지 않습니까? 이게 제 삶의 원칙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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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에는 제 돈을 들이지 않고 정말 맛있는
쇠고기를 먹었습니다.

지난 5월 17일
광주에서 '지공사(지역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들)' 첫 모임이 있었습니다. 모임을 마친 후 전남대 최정기 교수께서 맛있는 집을 안내하셨는데, 광주에서 쇠고기 구이와 생고기로 유명한 '유명회관'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약 5년 전
광주에서 소생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어느 식당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이후 제가 사는 경상도에서 그런 식의 생고기를 해주는 식당을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얼린 쇠고기와 배를 채 썰듯 썰어서 참기름계란 노른자에 비벼주는 육회는 있어도 광주식 생고기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광주에 가면 꼭 다시 생고기를 먹어보리라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도 광주에 갔지만 일행들과 함께 움직이는 바람에 그 기회를 놓쳤는데, 이번에 다시 먹게 된 것입니다.

모두 7명이었는데, 생고기 2인분과 안창살(
구이) 7인분을 시켰습니다. 이 집에서 1인분은 무조건 200g이라고 합니다.

생고기와 함께 각종 서비스 메뉴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횟간과 처녑(또는 천엽)이 먼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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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는 횟간이고, 아래는 처녑입니다. 육회도 나왔는데, 경상도와 많이 다릅니다. 이것 역시 광주식 육회가 더 고소하게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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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다른 곳에 비해 그리 비싸지도, 싸지도 않습니다. 한우만 취급한다고 써놨습니다. 설마 생고기를 파는 집에서 수입산을 속여팔기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믿고 먹었습니다.

하지만 30개월령 이상되는 미국산 쇠고기가 본격 수입되기 시작하면 이 집도 적잖은 타격을 받겠죠. 워낙 못믿을 세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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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생고기입니다.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소 엉덩이살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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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가까이서 찍어본 생고기 모습입니다. 된장과 참기름, 마늘 으깬 것으로 만든 소스에 찍어먹거나 그냥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먹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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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국입니다. 선지와 무, 콩나물을 넣어 만든 국인데, 시원하고도 감칠맛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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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주인아저씨(요리사인가?)가 도마와 고기를 갖고 오시더니 고기를 썰기 시작합니다. 안창살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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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고기를 썰어줍니다. 신뢰를 위해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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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좋아보이시나요? 제 눈에는 아주 좋은 고기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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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기 시작합니다. 이 고기는 너무 바싹 굽지 말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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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짝 익은 상태에서 먹어야 맛있답니다. 너무 익어버리면 고기가 딱딱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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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때쯤 새로운 메뉴가 나왔습니다. 대구에 사는 노용석 박사가 뭔가를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옆의 최정기 교수는 흐뭇한 표정으로 웃음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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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석 박사가 놀란 건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구워 먹어야 되느냐"고 물으니, "이 집에서 상추 위에 얹혀 나오는 것은 모두 생으로 먹는다"더군요. 이건 차돌배기살입니다. 저도 이걸 생으로 먹는 건 처음 봤습니다. 너무 쫄깃하고 맛있더군요. 이 맛 역시 못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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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날 우리 일행들 모습입니다. 종업원께 부탁해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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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돌배기 가까이서 다시 한번 찍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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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서비스인데요. 오징어입니다. 고기 다 먹은 후에 구워먹으라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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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하젓과 열무김치입니다. 토하젓 맛도 일품이었습니다. 이거 하나만 갖고 밥 한그릇 비워도 좋을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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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하고도 시원한 된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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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밥입니다. 된장과 궁합이 딱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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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반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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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날 모든 비용을 최정기 교수께서 부담했다는 겁니다. 다음 모임을 마산으로 잡아놓은 터여서 제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마산서 모일 땐 제가 모두 부담해야 하는데, 선례를 처음부터 바로 남기기 위해 각자 갹출합시다."

그랬더니 최 교수가 극구 자신이 부담하겠다네요. 참 큰 일입니다. 어쨌든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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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27 0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노용석 2008.06.02 1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용석입니다. 늦게 가입해 죄송합니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 상당히 헤맸지요...
    그날 사진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하군요. 김기자님 마산 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최정기선생님께도 그날 감사드리고요....
    여하튼 모두들 조만간 볼 수 있도록 합시다..

'지공사'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일상기록|2008. 5. 23.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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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다운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그동안 은폐·왜곡돼왔거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현대사를 조사·발굴·연구·보도해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각자 자기지역에서 중요하고 의미로운 일을 해오시긴 했지만, 고립분산돼 있다보니 어려움과 한계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선 소박하게나마 이런 분들이 모여 작은 모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제안은 김주완이 했고, 연락은 박만순 님이 했습니다. 첫 모임의 자리와 비용은 최정기 님이 마련해주셨습니다. 비용은 공동부담하자고 했지만, 최정기 님이 극구 부담하시겠다고 하셔서 굳이 말리지 않았습니다. (ㅋㅋ)

2008년 5월 17일 4시에 전남대 사회과학대 부학장실에서 만나 간단히 회의를 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가칭)‘지역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들’ 모임 제안

1. 처음부터 거창하고 방만하게 시작하지 말자. 그냥 친목모임처럼 시작하여 차츰 할 일을 찾자.

2. 회원가입은 열어두되, 일부러 늘이려고 하진 말자.

3. 소통기반은 팀블로그(http://local-history.tistory.com/)로 하자.
  -회원은 팀블로그의 일원인 공동편집자가 된다.
  -회원 개개인은 자기 이름의 카테고리를 갖고, 자유롭게 자신의 자료와 공부 결과물을 올려 공유한다.
  -회원이 올리는 글 중 필요한 경우 다음블로거뉴스에 송고한다.
  -회원끼리의 소통은 ‘회원게시판’의 글과 댓글로 한다.

4. 할 일은 차차 논의하자.
  예) 각 지역별 관변단체 간부 신상 조사, 지역별 현대사 지도 만들기, 지역별 지방의원 출신직업 조사, 지역별 토호세력 조사...

5. 회비는 따로 없이 모임 때마다 공동부담하되, 소박한 재정사업도 병행한다.
  -블로그 에드센스 광고, 링크프라이스 광고
  -블로그 후원광고 유치
  -한국언론재단 언론인연구모임 지원금
  -공동기획출판 인세수입

6. 모임은 분기별로 한 번 정도 하되, 지역별로 순회 개최하자.

대체로 이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지역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약칭이 '지공사'라는 것도 대체로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박만순 님은 "느슨하게 하더라도 명확한 고민을 갖고 하자. 모임 때 뭔가 목표를 잡자"고 하셨습니다.

최정기 님은 "박만순 님이 청주에서 만들었던 현대사지도를 각 지역에서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노용석 님은 "대구에는 골목지도도 있다.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와 별도로 경산 코발트광산 조사 중에 '선광장'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드러났다. 다음 모임 때 내용을 발표할 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다들 동의했습니다.

다음 모임은 여름휴가철 지나서 8월 말쯤 마산에서 갖기로 했습니다. 다음 모임에 추가로 초청할 분들을 박만순 님이 제안했습니다. 심규상, 최승호, 박병섭 님이었습니다. 역시 모두들 동의했습니다.

이후 박만순 님이 청주현대사 지도를 만들었던 과정과 의미, 효과 등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모두들 찬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곧 그날의 발제문을 박만순님이 올려주실 겁니다.)

그 후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갔습니다. 어떤 맛있는 걸 먹었는지는 곧 올리겠습니다. (최정기 님의 비용부담이 엄청났을 겁니다. 사모님에게 무사하셨는지 몰라~)

※ 다녀온 날 바로 정리해 올리려했는데, 게을러서 늦었습니다. 몇 일 지나고 나니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혹 제가 놓친 게 있다면 회원님들께서 댓글로 남겨주세요. 추가 또는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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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을 2008.05.23 1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사학 전공하는 학부생입니다 대학원 진학해서 현대사에 대해 좀 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저도 이런 모임에 참석할 날이 오겠지요 헤헤

  2. 포비 2008.05.23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놓치고 가는 현대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봅니다.
    역사 깊은 마산 골목지도도 준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987년 전두환 현상수배 벽보

역사기록|2008. 4. 26.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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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전사모)이라는 단체가 대구에 사무실을 내고 전두환기념관이라는 걸 만들겠다고 합니다.

전두환 범죄기록관 또는 만행기록관, 학살기록관을 세워도 시원찮을 판에 업적을 칭송하고 전승하자는 기념관이라니 가당치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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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21년 전, 6월항쟁이 들불처럼 번진 1987년 6월 10일 경남 마산의 시내 한 건물 벽에 붙어있던 현상수배 벽보가 있습니다.

이 벽보는 당시 한 신문기자가 시위현장에서 수거해 보관하고 있던 중 6월항쟁 20주년이 되던 작년에 저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시위 참여자 중 한 분이 매직으로 휘갈겨쓴 벽보는 당시 시민들의 전두환에 대한 증오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인 강간 폭행 사기 매국'이라는 죄명과 현상금으로 '직선개헌과 민주주의'를 드린다는 글귀가 재밌네요.

이 현상수배 벽보를 전사모라는 해괴한 단체에 선물로 드립니다. 다운받아 전두환기념관에 걸어두시면 어떨까요?
벽보 원본은 '전두환 범죄기록관'이 설립되면 거기에 기증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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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에효... 2008.05.23 1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국노들의 자손은 교과서 새로 만들어서 이것이 공정한 역사라고 주장하고
    멀쩡한 사람들 몰살시킨넘은 절에 잠깐 들어갔다가 뒷돈 두둑히 챙겨놓고 편안하게 발뻗고 자고
    언제쯤 나라가 바로설꼬...

  3. Favicon of http://blog.daum.net/shtingstar BlogIcon 정생 2008.05.23 1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퍼가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올릴 경우에는 출처를 알리고 올리겠습니다..
    올려서 문제가 생기게 되면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
    아직도 빨갱이 타령하는 것들이 있네요...
    제가 보기엔 무지한 중생들이 현실을 못보고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오는
    아무것도 모른체 살아가는 하나의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네요....

  4. 현정권 2008.05.23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정권이 얼매나 무능하면 극악무도한 전 아무게가 이렇게 설치는 소리가 나올까 ....
    애꿋은 전라도 사람들 왜그랬데 .. 이제 애꿋은 전국 되는 현정권은 우짤란가...

  5. ㅋㅋㅋ 2008.05.23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쓰레기가 포탈메인에 떠서 빨갱이들 광분하게 하고...
    빨갱이 개떼 니들이 아무리 짖어도..
    수천만의 정상인이 투표날 니들 응징한다...

  6. 벨제붑 2008.05.23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집은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 있습니다.
    할머니가 계셨고 아버지는 농협에 근무하셨고 어머니는 농삿일, 형,누나,동생
    그해 80년 여름 전남대 다니시던 작은삼촌이 방학겸 농삿일 돕는다고 와 있었죠
    이른 밤 친구들과 술마신다고 큰길 신장로 막걸리집 간 삼촌은 아침이 되어도 안들어 왔고 부랴부랴 행방을 찾던 아버지는 경찰서에 잡혀갔다는 연락을 받고 읍내로 찾아갔었댑니다,
    대학생이 늦은밤까지 술쳐먹고 길바닥에 오줌이나 싸고 다닌다면서 이런넘들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아버지에게 그냥 돌아가라 했답니다, 경찰서에 아버지 친구분도 계시고 해서 별일없을터이니 집에가서 기다리라고 2-3주 교육받고 금방 나온다고 그랬답니다,
    근데 1년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삼촌이 왔어요, 잠자다가 벌떡 일어서서 고함 지르기도 하시고
    귀신이 쒸었다고 할머니는 점쟁이 찾아 다니고 막 그러다가 동네 이목도 있고 하니
    정신병원에 보내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또 한두해 지났나, 자살 한다고 농약도 마시고 칼로 자해도 하고
    그 때 생각하면 ...끔찍,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데 마당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려 방을 봤더니 삼촌이 거품을 물고 누워있더군요, 할머니는 전남대학생 아들 자랑이 이만 저만 아니였는데 그 아들이 그렇게 죽었으니 할머니도 몇개월 동안 밥 잘 안드시더니 그렇게 돌아 가셨어여, 아버지는 홧김에 술만 마시면 경찰서 가서 난동 피우다 유치장 들어가시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시고, 휴~~~~~~~~~~~
    36나이에 다시금 옛 생각하며 글 쓸려니 감정이 북받치네,,,,
    여튼 한사람으로 인해 행복했던 내 유년시절이 완전 증오로 바껴 버렸습니다,
    인생이 바뀐거죠,,, 가끔 그때 만약 그 사람이 대통령이 아니였다면 우리 집안은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삼촌은 할머니 자랑처럼 판검사가 되었을까? 난 여유로운 가정 환경덕에 미술학원을 다닐수 있었을까?
    그래서 미대 진학을 했을까? 등등,,,
    여튼 누군가에겐 그 사람이 희망이였을지 모르나 나를 비롯 다른 많은 사람들에겐 그 사람은 불행을 안겨준 사람입니다,,,

  7. ㅋㅋㅋ 2008.05.23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두환 장군님이 광주 폭동 진압 못했다면 니들이 여기서 인터넷이나 하고 있을까?

    • 왜???? 2008.05.23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진압 안했으면?????

      인터넷도 못하냐????

    • 이런 개 뉴라이트 족속들 2008.05.23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장군이란다~~

    • ㅆㅣ앙 댓글쓰게 만드네... 2008.05.23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장군님이란다... 폭동 진압했단다...
      졸.. 모르면 꼬꼬댁이나 한대 치시고 가만히나 있지...
      그래 그래.. 니 말대로 폭동이라 치자!!!
      근대 그게 왜 그런지도 모르지?
      가만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
      젊은 나도 그 시절 그 얘기를 아버지한테 익히 듣고..
      관련서적과... 인터넷 글등을 토대로 어릴때 부터...
      알고 있었거든.... 모르면 닥.치시고 가만히 있으소~

  8. Favicon of http://synsophia.egloos.com BlogIcon 소피아 2008.05.23 1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컷 웃고 갑니다. 푸하하.

    근데 마지막 현상금 부분에서는 가슴이 찡하네요.
    마치 현 대한민국을 보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위에 빨갱이 운운하시는 분들,
    왜 전두환을 반대하면 빨갱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정확한 논거를 들어서 말씀해 보시지요.
    감정적으로 대응하시지 말고 말입니다.)

  9. zzzz 2008.05.23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두 두환이가 개명바기보단 잘 한듯.....

  10. ㅋㅋㅋ 2008.05.23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두환이 북괴군의 위협을 잘 막아 내서 적화통일을 막었기 때문에
    남한의 뇌없는 노사모 선동하는 빨갱이들이 제일 싫어하지...
    연결이 않되냐?
    니들 빨갱이들은 그래서 머리 나쁜거야...
    그래서 사회의 하층민 쓰레기 집단이고...
    뇌없는 노사모

  11. 멍멍이도안다 2008.05.23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동네 멍멍이도 전두환이 뭐했는지 다 알드라. 아직도 전두환이 영웅이니 헛소리 하는 넘들 보면

    우리동네 멍멍이보다 못하단 생각뿐~~~ 전두환이 얼마를 횡령한지 아냐???

    그 뒷넘 노태우는 얼만지 아냐??? 당시 시세로 따져서 둘이 합치면 우리나라 전 국민 한달 내내 자장면

    실컷 먹을 수 있는 돈이야. 그것도 밝혀진것만 그렇지.

    그런데도 29만원 밖에 없다고 개솔 지껄이는 녀석을 영웅이니 뭐니 하는 네놈들은 천하의 사기꾼 공범집

    단이야. 횡령만하면 말을 안해. 그넘이 한짓보면 2MB의 앞날이나 거의 비슷할듯. 전두환이 조금 더 악질

    이면 2MB는 지능적인 사기꾼이라는거 밖에 차이가 없음~~~

    전사모=개집단

  12. 나 80년대생이야 2008.05.23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80년대 생이고 정확히 전씨가 무슨 짓을 했는지 "겪어"보지 못했어. 그런데 이거하난 확실해. 공수부대가 투입됐다고... 시위 진압할려고 공수부대가.........최소한 군생활 한 사람이면, 대한민국 남자면 알거야. 공수부대는 전시에 적진 한가운데 투입되서 요인암살 및 주요 시설 파괴가 목적이라고. 그런 공수부대가 시위 진압하는데 동원됐어. 암살할 사람도 없었고 tnt 터뜨릴 일도 아니었는데 투입됐다고. 경제발전 시킨 대통령...좋아..근데 이거하나만 확실히 하자. 사람 목숨위에 설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어.

  13. ㅋㅋㅋ/ 2008.05.23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 몇이나 쳐먹고 그러는줄은 모르겠다만 빨갱이빨갱이하지마라 역겹다

    빨갱이는 사회선동하는새끼들이 빨갱이아니냐?

    사회선동하는건 너로보이는데?

    뭐같은자식아 니말이 정녕 옳다생각되면 시내 한복판에서 전두환장군님 하면서 찬양이나해봐라

    니 몰골이 어찌될찌 궁금한데?

  14. ㅋㅋㅋ 2008.05.23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빨갱이들 많네...

    길거리에서 개떼같이 덤비는 빨갱이들은

    내가 다 대가리 깨부숴 준다...

  15. ㅋㅋㅋ 2008.05.23 1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똑바로 들어
    현재는 속아서 빨갱이라도 사태만 정확하게 파악하면 잘잘 못을 가릴수 있어...

    자세히 모를때는 대강 이야기해서
    공수부대가 총쏘면서 광주 시민을 죽였기 때문에 그것에 항쟁한다고 우겨대는데..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광주 폭도들이 사람들 선동해서 서로 죽이고 광주 시민을 못살게 굴고
    광주의 폭동이 성공하면 전국에서 봉기하고 위로는 김일성이 땡크몰고 내려와서..
    남한을 적화 통일하려고 했기 때문에..
    공수부대가 진압 하려고 투입된것이고...(보병부대는 방어 부대고 대포쏘고 땡크쓰는 부대이고)
    (공수부대는 맨몸으로 몽둥이하나들고 진압하는 부대야)
    그 공수부대를 폭도들이 버스로 깔아뭉개고 아세아 자동차 장갑차로 깔어 뭉개고
    경찰서및 광산에서 훔쳐온 총 , 다이나마이트까지 사용면서 군경을 죽였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총쏘면서 진압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야...

  16. 페스탈로찌 2008.05.23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18때문에 그러시는 모양인데 넘 심한 글들이다.오일팔은 시민들이 유도한면도 적지 않다.버스로 깔아 뭉갤 기세에 후진하는 장갑차에 부대원이 깔려서 처참하게 죽었는데 흥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사람들도 무지 많이 구경하던 찰라에 그렇다고 하더라 군인들도 수십명 죽었고 하여간 그래도 어린시절 즉 80년대를 돌이켜 보면 좋은 추억들이 많았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그리고 수많은 애국노래들.나라의 국운이 승천하던 시절이었는데.그때의 지도자를 너무 매도하는건 아닌지.지도자는 결과로 평가해야 되는것 같다.사회가 다 그런거 지만 공수부대가 안간 주요 도시는 없었다.서울도 그렇고 부산도 그렇고 오직 그곳에서만 유혈 사태가 일어난 이유는 오직 그때 그 사람들만 알 것이다.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지 최상위층 몇몇이 책임져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17. 개대중 2008.05.23 1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의 사리사욕 채울려고
    지역감정 만들어 좁은 땅덩이 남북도 모자라
    동서로 갈라 놓은 개대중이의 죗값은 죽기전에 반드시 치루게 해야 한다.
    그리고 폭동인 항쟁인지 진압하려다가 죽은 사람수하고,
    개대중이 시절에 경제 망쳐 자살한 사람수하고 누가 더 많을까?

  18. 개대중 2008.05.23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버스로 경찰 깔아 뭉개고,
    경찰서 습격해서 무기 탈취해
    관공서 습격하는데
    그냥 가만 두리?
    그당시 웃기 유언비어하나!
    "곧 미군이 개입한다"
    ㅋㅋㅋㅋ
    미친 또라이들!

  19. ㅋㅋㅋ 2008.05.23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은 일년에 만오천명이 자살합니다...
    개대중 노구리의 코스닥 사기 , 하이닉스 사기 , 로또 사기 , 강원랜드 사기 , 등등등 !!!

  20. 겨울산 2008.05.23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대가리 학살 기념관이라...괜찮군...내가 초대 관장으로가서 전대가리의 천인공로할 만행을 자자손손 만대에 기념하기 위한 기발한 전시기획을 해보지요

  21. 안산유부남 고양이 2008.05.23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대중님 ㅋㅋㅋ님
    당신들의 의견은 충분히 읽어보았습니다만

    역사적으로 볼때 당신들이 하신말씀은 한낮과거의 집착에서 비롯된것이며 일명 "토끼 길들이기"
    전두환이가 이야기한 무뇌한서민 길들이기 정책으로 말미암아 논리적이지못한 단순한 충성적 의견으로 보입니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라하는데 빨갱이타령을 하며 매도하는것역시 근거가 부족함과 단지 과거와
    집안교육 분위기에서 배어나온 노예근성으로 주인에게 충성을 단순무지한 행동이며 발언입니다

    한나라당이 나라 말아먹고 imf 터지고 나몰라라 도망갈때 나라를 살린 사람들은 누구인지요

    피똥싸며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며 졸지에 거지가 될나라를 간신히 구제를해주었더니
    그들때문에 자살했다고요?

    자살한분들에 대한 명예회손이며 온국가가 힘들게 이룩해온 업적을 부정하는 망언이 아닐수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분들을 돌아가게 만든것인 지금 이정권을 잡고 또다시 나라를 망치려하는 그들의 에게 화살을 돌려야 할것입니다

    아..
    혹시 토끼 길들이기 잘모르실듯하니 간단하게 설명드리고자합니다

    토끼를 꼼짝달싹 못하게 바닥에 묶어둡니다 그리고 몇칠을 굶기다
    바로 코앞에 먹이를 두는것이죠 허기와 스트레스로 괴로와하던 토끼는 먹을것을 먹기위해 바둥대지만
    지켜갈뿐이랍니다 그렇게 몆시간이고 방치를 하다 토끼가 더이상 반항을 하지못할정도가 되면

    토끼가 보이는앞에 나서서 직접 밧줄을 풀어주고 손수 먹이를 주기 시작합니다

    그럼 토끼는 앞선 고통과 학대를 잊어버리고 오로지 자신을 구해준 그사람을 따른다는것이죠
    이게 토끼 길들이기 입니다 예전 박정희,전두환,지금의 이명박이가 하고있는 행위와 다를바 없는것입니다

    당신들도 피해자이기에 심심한 위로를 드리는바입니다.